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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중국

지난 여행기 - 1999북경5

by 장돌뱅이. 2017. 8. 31.

8. 북경오리구이(北京)
만리장성에 오르는 일과 북경 오리구이(베이징카오야)를 먹어 보는 일을
북경에 가면 해야 할 일 두가지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만리장성이야 이견이 있을 수 없겠지만  북경오리?
아마 북경오리의 위상을 높이려는 수사(修辭)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북경오리의 원조라고 맣는 "전문 전취덕고압점" 前門 全聚德鴨店으로 갔다.
1864년에 창업하여 무려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치안먼(前門) 앞의 치아먼따지에(前門大街)에 있다.
이 식당은 오늘날 대중적인 음식점이 되었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그렇게 쉽게 보통 사람들이 들어가 먹을 수
있는 오리구이 집이 아니었다고 한다.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하던 이 집은 예약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집에서 설정한 일정한 손님 기준에
합당한 사람에 한하여 선별적으로 초청(?)할 정도로 권위와 명성이 대단하던 집이었다고 한다. 
공산주의 이전의 이야기일까? 모르겠다.
지금도 외국 국빈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입구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全聚德식당의 오리구이 가격은 다른 보통 식당의 3배라고 한다.
우리는 예약을 하지 않고 식당을 찾아 갔다. 식당은 도로변에 위치하여 찾기가 쉬웠다.
오리 이외에도 다른 음식도 팔고 있으니 미리 중국 음식에 대하여 알고 가는 것이 좋겠다.
인터넷에 보면 중국 여행객들 사이에 '우리 입 맛에 맞는 중국 음식 20선'등이 나와 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종종 점원이 추천해 주는 음식은 비싸고 우리네 입맛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문을 받은 여 종업원은 조그만 커피잔만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오리혀 스프를 굉장히 권했는데
맛도 별로거니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다행이 우리는 한 그릇만 시켜보고 맛이 있으면 추가하겠다고
하여 큰 억울함은 없었다. 딸아이는 오리구이가 매우 맛이 있다고 했으나 아내는 그저 그렇다는 의견이었다.
우리는 오리와 다른 중국 음식 한 두 개를 추가하여 396유안을 지불했다.

북경오리구이 요리법은 600여년 전부터 개발되었다고 한다.
구이에 쓰일 오리는 특별한 사료와 방법으로 사육된다. 생후 2개월된 집오리를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좁고 어두운 곳에 가두고 강제로 매일 일정량의 사료를 먹인다.
이런 과정을 한달쯤 거치면 오리는 영양 과잉과 운동 부족으로 몸 전체에 살이 붙고 지방이 많아져 처음보다
2배정도로 뚱뚱해 진다. 이것은 '티엔야'라고 불리며 북경오리구이의 주 재료가 된다.
이렇게 기른 오리로 요리를 해야만 제 맛이 난다고 한다.

다음엔 이 오리의 깃털과 물갈퀴를 떼어내고 내장을 꺼내어 껍질과 살 사이에 공기를 넣어 부풀어 오르게 한다.
음식점마다 조금씩 맛이 틀린 것은 굽기 전에 오리를 담가두는 양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양념이 된 오리는 장작불에 통째로 구워진다. 잘 구워진 오리는 붉은 색이 나고 기름기로 반짝반짝 윤이 난다.
오리가 다 구워지면 요리사가 손수레에 싣고 손님 앞에 와서 직접 칼을 이용하여 오리껍질과 살을 잘라 접시에 담아 낸다.
바삭바삭 거리는 껍질과 살을 소스를 묻힌 후 생파와 함께 얇은 밀전병에 싸서 먹는다.

북경오리 사육법과 조리법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보신탕을 둘러 싼 논쟁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88 올림픽때 프랑스의 한 여배우는 우리 정부에 대하여 보신탕 판매를 중지하라고 '생떼'를 썼다.

위의 북경오리 사육법이나 조리법은 어떤가? 우리의 개의 그것과 비교하여 더 '인간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 '귀엽고', '죄없고', '예쁘기만 한' 오리를 움직일 수도 없는 캄캄한 곳에 가두고 강제로 특별한 사료를
먹이는 '잔학 행위'는 정말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북경오리점 앞에서 오리를 위해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그런데 어째서 개는 오리나 다른 동물보다 더 많은 염려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도인들이 다른 나라에게 소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고, 이슬람교도들이 다른 나라에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면
그 여배우는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나는 인간의 음식을 위해 양육되는 모든 동물들의 생존 조건과
죽이는 방법에 최대한도의 인격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음식문화는 주어진 환경 하에서 생존을 위한 동물성 단백질을 무엇으로부터 얻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동물성 단백질 획득에 가장 용이한 방법과 대상을 따라 변화해 온 것이다.
그래서 음식과 언어는 어떤 민족과 계급의 고유한 것이다.
보신탕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뛰어난 전통 음식은 아닐지 몰라도 특별히 비난받아야 할 음식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난 복날 보신탕을 먹어본 적 없고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9. 북경의 서커스
어린 시절 서커스에 대한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동네 어귀에 어느 날 갑자기 천막이 올라가고 '기쁜소리사'라고 씌여진 나팔 모양의 스피커를 매단
트럭이 동네 고샅길을 누비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ㅇㅇ리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어쩌구하며
서커스단의 방문을 알리는 선전 방송을 시작하면, 우리 개구쟁이들은 무슨 축제라도 만난 양,
차 뒤꽁무니를 쫓아가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 시절 우리들에게 서커스단의 방문은 천막극장과 약장수 방문에 버금가는 '대사건'으로 저마다 부모들을 졸라
입장료를 받아 내거나 아니면 동네의 힘깨나 쓰는 '형님들'이나 어른들의 뒤를 따라 '무료입장'의 기회를 엿보아야 했다.
한번은 멀리 떨어진 시내쪽에 서커스단이 들어와 사촌 형을 따라 구경을 간 적이 있다.
그때 구경도 구경이었지만 돌아오면서 형이 사준 짜장면의 그 환상적인 맛이라니......

나는 지금도 어디서 서커스단의 천막이 눈에 띠면 식구들과 들러 보곤 한다.
최근에는 천막이 잘 눈에 띄지도 않아, 이삼년 전인가, '80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동춘서커스 단의 공연을 가본 게 마지막이었다.
흙바닥 위에 놓인 낡은 철제 의자. 어두운 조명. 60년대식의 촌스런 진행. 냄새나는 화장실......
아직까지 이런 단체가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근대화의 물결에 떠밀리고 큰 자본들의 오락산업에 채여,
어릴 적 우리를 흥분시켰던 서커스는 이제 거의 아사 상태에 있는 듯 했다.

중국의 서커스는 1966년 문화혁명에 의해 중단되었다가 1977년 부활되어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여
현재 중국은 서커스의 전성 시대라고 한다. 북경에는 서커스만 공연하는 전용 극장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우리는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챠오양쥐창 (朝陽劇場)으로 갔다.
입장료는 60유안이었고 19:15부터 20:45까지 공연을 하였다.
예부터 중국 농민들 사이에는 흉년이 닥치거나 농한기가 되면 곡예로 돈벌이를 하던 전통이 있었다.
오늘 날 중국 서커스에 농기구나 항아리등 생활 도구들이 소품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조양극장은 깨끗한 실내와 편안한 의자를 가진 공연 전문극장이었다.
서커스 내용도 딸아이와 보기에도 적절하고 아기자기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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