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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

여행에 대한 잡담 1. - 서두르지 않아야겠다.

by 장돌뱅이. 2005. 2. 18.

 


얼마 전까지 국내건 해외건 내게 있어 여행은 다분히 양적 축적을 위한,
'달리는 말에서 산을 보는' 식의 바쁜 일정을 의미했던 것 같다.

어떤 지역을 가볼라치면 계획 단계부터 시간을 10분 단위로 쪼개 빡빡한 일정을 만들고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 일정에 따라
그야말로 강행군을 하였던 것이다. 식구들에겐 시간이 한정된 직장인이 여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이것밖에 더 있겠냐고 설득을 시켰고 아내와 딸아이도 그런 논리에 대체적으로 긍정하는 편이었다.

일테면 소중한 시간을 쪼개서 왔으니 가능한 한 많이 보고가야 본전 뽑는 일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어떤 때는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면 단 몇 마디라도 정리를 해볼 틈이 없이 피곤함에 쓰러져 자고,
이튿날 아침 서둘러 일어나
우리가 만든 일정표를 지키기 위해 허겁지겁 길을 떠난 적도 있었다.
자유롭고자 떠난 여행에서 우리 스스로 만든 일정표가 어느 덧 우리를 속박하는 또 다른 족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언젠가 한 고객이 내가 파는 제품의 가격 문제로 협상을 벌이던 도중에
"그런다고 세상 돈을 다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내게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엉뚱하게도 나의 여행 방식에 대한 무슨 충고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정신 없이 설치고 다닌 데도 세상 모든 곳을 다 가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더 많이 가본다고 더 좋은 여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어디를 얼마만큼 다녀왔는가도 중요한 일이지만 어떻게 다녀왔는가는 더 중요한 일이겠다.

이제는 서두르지 않아야겠다.
어느 곳으로의 여행이든 우리의 눈길이 오래 머물고
우리의 가슴이 많은 것을 받아 들여 그곳에 있는 작은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심는 여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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