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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할리우드에서 만난 '불신지옥'

by 장돌뱅이. 2013. 5. 1.

회사일로 LA를 다녀왔다.
손님과 또 다른 손님을 만나는 사이가 좀 길어 시간을 죽일 겸 지하철 METRO를 타고 할리우드로 갔다. 엘에이의 메트로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티켓 검사대가 없었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내가 모르고 그냥 지나왔나 생각했다.

옆좌석의 사람에게 물어보니 검사대는 특별히 없고 가끔씩 지하철 내에서 표검사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무임승차를 했다가 걸리면 250불의 벌금을 물어야 한단다. 돌아오는 길에 자동매표기 옆에 붙은 안내판을 읽어보니 실제로 그랬다. 다만 벌금의 구체적인 액수는 적혀 있지 않았다. 벌금에 앞서 그 운영 방법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위 사진 : WALK OF FAME

할리우드 '명성의 거리(Walk of Fame)'를 따라 올라가다 한국에서 낯익은 광경을 보았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중년의 여성이 등뒤에 “PLEASE DON'T GO TO HELL, BELIEVE IN JESUS CHRIST”라고 쓰인 초록색 조끼를 입고 같은 문장을 소리치며 번잡한 거리를 반복해서 오르내렸다. 
조끼의 앞쪽에는 “불신지옥 예수천당”이라고 한글이 쓰여 있었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희한한 풍경을 보았다는 듯 웃었다.
그러나 그녀는 진지했다. 진지하였기에 점점 더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할리우드 주변의 관광객을 모으는 호객꾼들의 일부는 시끄럽다고 저쪽으로 가라고 면박까지 주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웃음거리인 듯했다. 그녀는 그런 주위의 반응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같은 말을 주문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PLEASE DON'T GO TO HELL!"
"BELIEVE IN JESUS CHRIST!”
“JESUS LOVES YOU!"

나는 좀 딱한 생각이 들어 그녀가 내 앞을 지나갈 때 한국분이시냐고 말을 건네 보았다.
그녀는 예의 그 미소를 버리지 않은 채 그렇다고 발길을 멈추었다.

“아까 보니 뭐라고 그러는 사람들이 있던데··· 괜찮으세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매일 당하는 일이니까 상관없어요. 불쌍한 사람들이죠. 예수를 믿으라는데··· 믿기만 하면 천국을 갈 수 있는데···
오히려 딱하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이곳에 매일 나오세요?”
“매일은 아니고 어떨 때는 다운타운에서 전단지만 나누어주는데 오늘은 예수님이 이곳에 가서 외치라고 기도 중에 응답을 주셨거든요.”
“그렇게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까?”
“그럼요. 예수님은 우리 일상을 모두 보고 계시거든요. 예수님을 믿으세요?”
“예··· 뭐··· 그냥······
“(전단지를 주며) 교회 나가시고 예수 믿으세요. 안 그러시면 불길 지옥에 떨어져요.”

 “이렇게 다니시는 게 전도에 도움이 되십니까?"
"실제로 이렇게 하셔서 누군가를 교회로 이끈 적이 있으세요? 좀 다른 방법을······
나의 물음에 그녀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상관없어요. 저는 예수님의 응답을 실천하면 되니까요. 언젠가는 전도도 되겠지요. 믿으세요!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왜 안 믿으세요?”

미국에 온 지 20년이 다되었다는 그녀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크기’를 지닌 것 같았다. 그녀의 ‘믿음’은 견고하여 '말씀'이외의 다른 '말'은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한국에서 그랬듯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다. 나를 만나고 그녀는 더욱 커진 목소리로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걸어갔다.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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