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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4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총동창회처럼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의 번잡함과 형식적인 '위하여'에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수다스런 '추억팔이'의 감정 소모보다는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해도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들 몇 명과 함께 두런두런 편안한 이야기를 나누는 단출한 송년 모임이 좋아졌다. 하기 싫은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신선'이 바로 백수 아닌가. 중학교 동창이면서 동시에 대학 동창인, 반백 년이 넘게 한결 같이 조용한 성품의 친구와 만났다. 내게 부암동의 식당 "소소한 풍경"은 그런 모임에 적당해 보인다. 너무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분위기가 그렇고 큰 기교를 부리지 않고 수수한 음식이 그렇다. 특히 오늘 가지탕은 처음 먹어보는데도 익숙한 맛이었고 그러면서도 신선한 아이디어의 음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 2023. 12. 20.
제주 함덕 20 아침 함덕 해변을 걸었다. 기온은 다시 온화해지고 바람도 한결 잦아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오드랑 빵집에서 어니언 베이글을 사다가 버섯수프와 함께 먹었다. 제주살이가 10일 정도 남았으므로 이제부턴 냉장고 속의 식재료를 줄여나가야 한다. 점심엔 며칠 전 아내의 친구가 사다준 갈치를 꺼냈다. 재료가 워낙 싱싱한 터라 그냥 프라이팬에 구웠을 뿐인데도 여느 갈치구이 전문식당의 맛에 뒤지지 않았다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용두암은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제주도가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던 시절에 제주 인증샷을 찍는 장소였다. 신혼부부의 집들이를 갈 때마다 벽에 걸린 용두암 배경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나는 아내에게 빚처럼 남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아내와 용두암을 찾았을 때.. 2022. 11. 9.
"일본아, 나는 너의 나라를 주어도 싫다" 식민주의의 본질은 폭력이다. 식민지의 자원과 인간에 대한 수탈을 목적으로 자행되는 식민국의 야만적 폭력이다. 그것은 종종 문명, 개화, 개발, 경제, 교역, 교육, 선교 등의 이름을 내걸지만 실질적으로는 총과 칼에 의해 자행된다. 식민지의 정치 · 경제 · 문화적 구조는 몰론 모든 유무형의 재화와 가치들은 식민국의 목적에 맞게 왜곡되고 종속된다. 식민지에게 독립적인 것은 없다. 식민지의 어떤 변화도 결국 식민국의 이익을 위해 기획되고 실행된 것일 뿐이다. 일제 강점기 역시 본질은 수탈과 수탈 위한 폭력이다. 역사 시간에 배웠거니와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는 일본을 위한 쌀 공급 '창고'와 침략 전쟁을 위한 병참 기지화라는 기형적인 변화를 강요받았다. 조선의 민족경제는 몰락했고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는 성장 발.. 2019. 7. 25.
내가 읽은 쉬운 시 31 - 김광섭의「벌(罰)」 *위 사진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갖가지 행사와 방송의 특집 프로그램이 유난하다. 김광섭의 시와 글로 잠시나마 그 고난의 시기를 생각해 본다.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 김광섭은 "1941년 2월21일 이른 아침 한인(韓人) 형사들에게 온 집안을 수색당하며 끌여나온 후" 제자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는 죄목으로 구속된다. 나는 2223번 / 죄인의 옷을 걸치고 / 가슴에 패를 차고 / 이름 높은 서대문 형무소/ 제3동 62호실 / 북편 독방에 홀로 앉아/ 「네가 광섭이냐」고 / 혼잣말로 물어보았다 3년하고도 8개월 / 1300여 일 / 그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 나는 시간을 헤이고 손꼽으면서 / 똥통과 세수 대야와 걸레 / 젓가락과 양재기로 더불어 / 추기 나는 어두운 방 .. 2015.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