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고요가 머리 위를 지날 때
김애란의 단편소설 「칼자국」은 이십여 년간 칼국수 장사하며, 무능력하고 바람까지 피운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정을 이끈 억척스럽고 부지런하면서도 다정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그렸다. 어느 날, 나는 내가 진정으로 배곯아 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리둥절해진 적이 있다. 궁핍 혹은 넉넉함을 떠나, 말 그대로 누군가의 순수한 허기, 순수한 식욕을 다른 누군가가 수십 년간 감당해 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놀라웠던 까닭이다. 오랜 세월, 어머니는 뭘 재우고, 절이고, 저장하고, 크게 웃고, 또 가끔은 팔뚝의 때를 밀다 혼자 울었다. 여자가 칼 갈아 쓰면 팔자가 드세다는데 아직까지 서방이나 새끼 잡아먹지 않은 걸 보면 괜찮은가 보다 능청도 떨면서. 생일이면 양지를 찢어 미역국을 끓이고, 구정에는 가래..
2023.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