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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3 - 김소월

by 장돌뱅이. 2014. 5. 10.


김소월은 시인으로선 천재였지만 사업가로선 그러지 못했던가보다.

광산과 신문사 지국의 경영이 실패하면서
소월은 낙담한 끝에 음독으로
32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소월은 생전에 단 한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1925년에 나온『진달래꽃』이 그것이다.
「먼 후일」은 그 시집의 맨 처음 나온 시라고 한다.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사실 먼  훗날까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표현은 완곡하나, 완곡하기에 더 강렬하다. 소월의 방식이다.
소월은 ‘이곳에 없는 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자주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는 식의
절제와 반어을 통하여 극대화 시킨다. 

「초혼」은 그런 공식의 단 한번의 예외인 것 같다.
초혼은 직접적으로 사별의 의식이라 슬픔이 극한에 닿겠지만
모든 사랑의 상실이 죽음과 같은 고통일 것이다.
한국 시에서 이만큼 절절한 외침이 또 있었던가 싶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자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나가 앉은 산 우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교과서에서 배운 시만으로 김소월의 시는 넘친다.
그의 시를 모두 옮겨 적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나만 더 적으면서 김소월을 떠나자.
서울 남산에 있는 그의 시비에 「산유화」가 있다.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간단명료하면서 정갈하다.
반복해서 읽을수록 맛이 나는 시다.
태어나고 자라고 죽고 - 우리 모두가 그런 존재라는 걸
사람들이 조금만 더 자주 생각해도
세상은 지금보다 많이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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