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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5 - 김춘수의 「꽃」

by 장돌뱅이. 2014. 5. 10.


*위 그림 : GRANVILLE REDMOND 1926년 작, 「CALIFORNIA POPPY FIELD


내가 처음 읽은 시가 이발소 거울 위에 붙어있던 푸쉬킨의 시였듯이

반드시 시집을 통하지 않아도 경험한 시는 누구에게나 많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있는 요즈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의식을 하든 안 하든 시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 왔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면서 김춘수의 시, 「꽃」을 읽어보거나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꽃」은 책받침이나 공책 겉표지에 장식용으로 자주 쓰여 있었고,
“별이 빛나는 밤에”나 “밤을 잊은 그대에게” 같은 심야 라디오 방송의 애청자 엽서를 통해서도 흘러나왔다.
군대 시절, 여성과 펜팔을 나누던 고참이 ‘뭐 폼 나는 시 같은 것 없냐’ 고 물었을 때
대충 생각나는 대로 이 시를 읊어주었더니 기대 이상으로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시의 빈번한 접촉 횟수에 비해 정작 시인에 대해 아는 바는 별로 없다.
알고 있는 그의 다른 시는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정도이다.
서점에서 몇 번인가 그의 시집을 들추어보았지만 그의 다른 시는 내게 너무 어렵기도 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꽃」을 매우 좋아하진 않았다.
‘여고생 취향의 시’라고 함부로 시건방진 평을 내린 적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이 시를 대할 때마다 곰곰이 읽어보게 된다.
내가 다정하게 불러주어야 할, 그러나 잊고 지내는 이름과 존재와 의미들이 주변에 있는지 돌아보면서.
이해는 쉬울지 모르나 그 이해의 실천이 어려운 것은 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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