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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집장구

by 장돌뱅이. 2014. 10. 15.

 

 

 




일년에 한 번은 집이

장구소리를 냈다
뜯어낸 문에
풀비로 쓱싹쓱싹
새 창호지를 바른 날이었다
한입 가득 머금은 물을
푸- 푸- 골고루 뿌려준 뒤
그늘에서 말리면 빳빳하게 당겨지던 창호문
너덜너덜 해어진 안팎의 경계가
탱탱해져서,
수저 부딪는 소리도
새소리 닭울음소리도 한결 울림이 좋았다

대나무 그림자가 장구채처럼 문에 어리던 날이었다
그런 날이면 코 고는 소리에도 정든 가락이 실려 있었다
-손택수의 시, "집장구"-


시인의 '집장구'란 표현이 기발하다.


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어렸을 적 한옥에 살 때 바쁜 농사가 끝난 늦가을이면
볕이 좋은 날을 잡아 부모님은 집안의 모든 방문을 떼어내
해묵은 창호지를 물에 불려 밀어냈다.
그리고 인용한 시에서처럼 "풀비로 쓱싹쓱싹" 새 창호지를 발랐다.
어머니는 여름에 갈무리 해두었던 마른 꽃잎과 이파리들을 꺼내 장식으로 넣기도 했다.

저녁이면 손때가 묻고 여기 저기 구멍이 있던 방문은
손을 대기가 미안할 정도로 정갈하게 변해있었고
방안엔 마른 풀냄새가 향기롭게 진동을 했다.
팽팽해진 창호지는 손으로 퉁기면 둥둥 울리는 장구 소리를 내곤 했는데,
나는 점점 더 큰 소리를 내려고 자꾸 세게 퉁기다가
채 이틀도 지나지 않은 새 방문에 구멍을 내기도 했다.

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새 종이 바른 ㄱㄴㄷㄹㅁㅂ의 문틀을 바라보고 싶다.
그 방안에서 폭신한 요를 깔고 드러누워 만화책을 보다 잠이 들고 싶다.
그러다 밥 먹고 자라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에 어린 시절처럼 어리광을 부리며
게으른 몸짓으로 깨어나고 싶다.

*2009년 10월 샌디에고에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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