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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47 - 신미나의「오이지」

by 장돌뱅이. 2016. 6. 12.



   헤어진 애인이 꿈에 나왔다


   물기 좀 짜줘요

   오이지를 베로 싸서 줬더니
   꼭 눈덩이를 뭉치듯
   고들고들하게 물기를 짜서 돌려주었다

 

   꿈속에서도

   그런 게 미안했다


33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 하는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댓 권의 요리책을 샀다.
결혼 후 아내가 맡아온 식탁을 이제부턴 전적으로 내가 본격적으로 책임져 볼 생각에서였다.
이런 결심을 공개해 두어야 내 결심의 흔들림의 폭이 작아질 것이다.

오이를 샀다. 
아삭한 식감의 생오이무침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1. 얇게 썬 오이를 소금을 넣고 절인다.
2. 절인 오이를 물에 씻어 물기를 '꼭 눈덩이 뭉치듯 고들고들하게' 짠다.
3, 물기를 짠 오이에 고춧가루와 설탕과 식초를 넣고무친 다음 통깨를 뿌린다.
4. 바로 먹어도 되지만 냉장고에 반나절 정도 넣어 뒀다 먹으면 더 좋다.

이미 수십 번은 만들어 보았을 아내는 맛있다고 응원을 해주었다.



오늘은 오이지를 만들었다.

사실 이태껏 오이지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세상에 오이지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이지는 밥상 위에서 크게 주목 받는 반찬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와 아내는 철이 되면 오이지를 담궜고 또 무침으로 만들어 상에 올려주었다.
나는 기껏해야 한두 점 정도 먹고 말았지만.

그런데 내가 직접 양념을 계량해가며 무쳐낸 오이지는 맛이 있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밥에 물 말아서 그것만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상품의 가치는 그것에 들어간 노동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는 경제학적 논리가
음식의 맛에도 적용이 되는 것일까?
역시 간단한 요리법이 있음에도 나는 평균치보다 오랜 시간을 투자했을 것이므로.

1. 소금에 절여 두었던 오이지를 꺼내 얇게 썬 후 물기를'꼭 눈덩이 뭉치듯 고들고들하게' 짠다.
2. 양파는 채 썰고양고추, 홍고추, 실파는 송송 썰어 넣고
3. 고추가루와 다진 마늘, 설탕과 참기름를 더하여 조물조물 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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