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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44 - 하종오의「은하수」

by 장돌뱅이. 2016. 2. 28.

<<동주>>를 본 뒷날 <<귀향>>을 보았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인 '종군위안부'에 관한 영화.
"귀향"의 '귀'는 '돌아갈 귀(歸)'가 아니라 ''귀신 귀(鬼)'였다.
그러니까 "귀향"은 그냥 "환향(還鄕)"의 의미가 아니라 영문 제목에서 보듯 "고향으로 돌아오는 영혼들(SPIRIT'S HOMECOMING)"의 의미였다.

영화로서만 감상을 말하자면 비극 이전의 평화스러운 가족과 친구들과의 모습이 조금 과장되어 보였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타나는 독립군의 활약도 상투적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다시 가족과 재회하는 모습도 군더더기로 느껴졌다.
그냥 음성으로만 처리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접신을 통해 현재에 불려져 나온 아픈 영혼들과의 교감은 신선했고 노배우 손숙의 연기는 차분하면서도 강렬했다.

영화 밖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직 우리는 아픈 '영혼'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기 위한 따듯한 '고향'을 가꾸지 못했다.
'영혼'들은 온전히 돌아올 수 없어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서성인다.

'무엇이 소녀들을 지옥으로 보냈나?'
영화 포스터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일제였다. 식민지 통치였다.
그것의 본질은 한마디로 살인과 강간, 억압과 파괴, 수탈과 착취를 위한 야만적인 폭력이다.
친일파는 일신의 영달만을 좇아 거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일제의 '아바타'일뿐이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단지 살기 위해 '조폭'을 만들거나 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대 간 누부가 끌러놓았을 옷고름이
시방도 밤이면 펄럭여 보이누나
꽃댕기 쥐어잡혀 끌려가던 논둑에는
봄이 와서 댕기풀이 무더기로 돋아나건만
고무신 질질 끌고 가서 오지 않는 누부야
나 홀로 절름거리며 논 매고 돌아온다
대동아전쟁에 징병간 형님 찾으려고
공출 내러 갔던 아배는 매 맞아 죽고
솔잎 씹으며 어매는 부황들어 죽어,
갈 적에 이 땅의 슬픔 안고 간 누부야
나는 논 한 골 매는데 뼈가 다 빠지더라
피눈물로 바들바들 앞섶 풀었을 누부야
동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누부야
반물치마 속에 숨겨 간 아지랑이 풀어내어
수많은 허리 휘감아 몸부림쳤을 누부야
눈 딱 감고 혀 앙깨문 이빨 사이로
뱉어내어 아직도 떠돌고 있는 신음소리
'닛뽄징 조오센징 덴노헤이까 오나지네'*
북방하늘 질겁하는 별들에서 들려오누나

* 일본인과 조선인은 천황폐하가 같지요'라는 뜻으로, 일제에 강제 매춘 당한 우리나라 여성들이 그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일본 병사에 대한 서비스 용어로 서툴게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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