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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41 - 문병란의「직녀에게」

by 장돌뱅이. 2016. 2. 17.

*2월12일 한겨레신문 그림판

어지럽다.
화려한 논리와 명분으로 치장한 무서운 주장들이 거칠게 몰아치고 있다.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탐욕들이 나라 안팍에서 들썩인다.

복잡한 실타래는 때로 단순하게 보면 풀리는 길이 보이기도 한다.
사실 답은 유치원 때부터 배워왔는지도 모른다.
복잡한 국제 역학의 해법도 상식에서 시작하면 된다.

이별보다는 만남을,
분노보다는 포용을,
증오보다는 사랑을,
공포보다는 해방을,
슬픔보다는 기쁨을,
분열보다는 봉합을,
값싸고 쉬운(?) 전쟁보다는
비싸고 힘들어도 평화를.

작년에 작고한 시인 문병란의 시를 읇조려 본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 문병란, 「직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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