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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38 - 신영복님의 삶과 글

by 장돌뱅이. 2016. 1. 19.

작년 여름 광화문의 서점에서 신영복님의 서화전이 있었다.
"함께 맞는 비"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서점에서 가까운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을 다녀온 직후였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슬픔과 분노가 스러지고 대신 자리 잡기 시작한 체념과 무기력.
"함께 맞는 비"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이 글을 아전인수의 변명으로 내세우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기도 하면서.

내게는 어려운 말이지만 신영복님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로 ‘석과불식’(碩果不食)을 꼽았다.
그의 (감옥) 20년을 견디게 한 화두였다고.

석과는 '씨과일'이란 뜻으로 "씨 과실은 먹지 않는 것"이 지혜이며 동시에 교훈이라고 했다.

"씨과실은 새 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줍니다.
한 알의 외로운 석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나아가는 그림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찹니다.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어 내는 지혜이며 교훈입니다."(『담론』중에서)


한겨레신문 2015년  5월9일에는 그의 대담 기사가 실렸다. 그 일부를 옮겨본다.

<많은 이들이 선생님을 이 시대의 대표적 스승, 대표적 멘토라고 부르는데요.>

거대담론도 사라지고 존경했던 사람들의 추락도 많이 보고 하니까 뭔가 사표(師表)로 삼을 만한 대상을
성급하게 구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 사표나 스승이라는 건 당대에는 존립할 수 없는 겁니다.
어떤 개인의 인격 속에 모든 게 다 들어간 사표가 있다면 공부하긴 참 편하겠죠. 그렇지만 그건 낡은 생각이에요.
집단지성 같은 게 필요하고 집단지성을 위한 공간을, 그 진지를 어떻게 만들 건가가 앞으로의 지식인들이
핵심적으로 고민할 과제예요
.”

<이번 책에서(『담론』) 제시하신 원형 인식모델은 우리 사유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 같습니다. 토대와 상부구조를
기계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음과 양
, ()와 동(), 이상과 현실, 좌와 우를 둥근 원 안의 대칭선상에 놓으셨지요.
대비되는 것들은 서로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것이라고 하셨고요. 그 말씀엔 다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막상 현실을 보면 이게 쉽지가 않아요
. 카운터파트가 격이 너무 떨어져요. 어느 정도 격이 맞아야 상호보완이고
뭐고 하지 않겠습니까
?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탐욕과 독선이 도를 넘은 지 오랩니다.>

차이라는 건 단순히 공존하는 데서 끝내는 게 아니고, 자기 변화의 시작으로 삼아야 해요. 차이를 자기 변화의
학습교본으로 삼고 실천하는 것
, 그게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에 이은 가슴에서 발(실천)로의 긴 여행이지요.
근데 우리 현실에서 좌-, -, 진보-보수, 이런 대비 관계가 과연 상생적인 대비 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냐?
너무나 비대칭적이어서 도대체 지양(止揚)을 할 수 있는 상생의 파트너가 아니지 않으냐? 그럴 수 있어요.
근데 어느 나라 역사에도 그렇게 이상적인, 완벽한 평형을 유지하는 대비 관계는 극히 드뭅니다. 우리만 하더라도
분단과 외세
, 그리고 임란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노론 권력의 오래된 지배구조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해 왔잖아요.”

<노론 권력이라고요?>

, 임란 이후에 인조반정으로 광해군 몰아내고 나서 지금까지 우리나라 지배권력은 한 번도 안 바뀌었어요.
노론 세력이 한일합방 때도 총독부에서 합방 은사금을 제일 많이 받았지요. 노론이 56, 소론이 6, 대북이 한 사람.
압도적인 노론이 한일합방의 주축이거든요. 해방 이후에도 마찬가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도 행정부만 일부 바뀐 거지,
통치권력이 바뀐 적은 없습니다. 외세를 등에 업고 그렇게 해왔지요. 대학, 대학교수, 각종 재단, 무슨 시스템 이런 것들
쫙 다 소위 말하는 보수진영이 장악하고 있어요
.”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어쩌겠어요? 그렇게 비대칭적으로 자기를 강화하고 군림하는 집단은 다 자기 이유가 있는데. 그런데 그런 중심부 집단은
그게 또 약점이 돼요
. 중심부는 변방의 자유로움과 창조성이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인류문명의 중심은 부단히 변방에서 변방으로 옮겨왔잖아요. 그런데 이런 역사적 변화는 그렇게 쉽게 진행되는 게 아니에요.
역사의 장기성과 굴곡성을 생각하면, 가시적 성과나 목표 달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과정 자체를 아름답게
,
자부심 있게, 그 자체를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왜냐면 그래야 오래 버티니까. 작은 숲(공동체)
을 많이 만들어서
서로 위로도 하고
, 작은 약속도 하고, 인간적인 과정을 잘 관리하면서 가는 !”

 

 

그가 투병 생활 중에 펴낸 마지막 저서 『담론』의 마지막은 위 글로 마무리 된다.
서화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납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수많은 언약을 강물처럼 흘려보냈습니다.
강 언덕에 서서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수많은 약속을 생각합니다. 때늦은 회한을 응어리고로앓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강 언덕에 올라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강물과 같은 언약들이 언젠가는 여러분의 삶의 길목에서 꽃으로
다시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미 알려진 대로 1월15일 저녁 신영복님은 하늘의 부름을 받아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 편안하시길.

아픔과 절망의 시간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신뢰와 사랑으로 가꾼 그의 글을
당분간 다시 읽으며 어두운 세상을 더듬어 갈 용기와 길을 물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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