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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37 - 김민준의「괜찮아」와 신경림의「갈대」

by 장돌뱅이. 2016. 1. 7.


송년회 모임에서 친구가 책을 한권씩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근래에 읽은 책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책이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이전에도 모임이 있을 때 가끔씩 책을 나누어주곤 했다.

이번에 나누어준 책의 제목은 『계절에서 기다릴께』였다.
책은 삶과 사랑에 대한 단상을 산뜻한 발상과 감성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때론 기발하고 때론 애틋했다.

평소 친구의 따뜻한 품성과 닮아 보였다.
친구는 글속의 작고 예민한 표현들에 감동스러워 했다.
마른 살비듬 버석거리는 나이에 글 한 줄에 마음을 적실 줄 아는 소담스런 마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친구의 마음이 아직 순수하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솔직히 내가 직접 사서 볼 취향의 책은 아니었지만
친구의 정성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는 인연의 글이라는 생각에
하루에 조금씩 서너 페이지씩 읽는 것으로 근 한 달 만인 작년 연말즈음에 읽기를 마쳤다.

그 중 "괜찮아"라는 제목의 글 한편을 옮겨본다.


   누구나 시작은 울음과 함께였을 것이다. “엄마 저 태어났어요!”라며 당당하게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큰 소리로 우는 것이 그 순간 엄마와 아이
   사이에는 존재하는 유일한 언어다
. 그것은 아름답다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어떤 것인데
   때때로 긴 설명보다 뚝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이 그간의 이야기들을 더 자세하게 말해주기도 하는
   것처럼 울음을 터뜨린다는 것은 내 속에 너무도 벅찬 무엇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

   견디기 힘든 일들 앞에서 울먹이던 기억과 길을 걷다가 이유없이 쏟아진 그 눈물과 돌아서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그의 몫까지 함께 뱉어야만 했던 서러움 같은 것들
, 나는 그것이 헛되이 지나가는 이유없는
   스침은 아니라고 믿는다
.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떨림이 있고 울음은 그 떨림이 멈추지 않게 하는
   여러 가지 응원 중에 하나다
.

   우리가 멈추려고 할 때마다 눈물은 마음을 두드린다. “차라리 펑펑 울어보지 그러냐.”하고
   나에게 기대어 쉴 수 있는 그늘이 되어 준다.

   우리 모두 울어도 괜찮다.


'우리 모두 울어도 괜찮다'를 생각해본다.
새해는 저마다 '웃는' 한 해를 꿈꾸어보지만 어디 삶이 그리 만만하던가.
주어진 일상은 자주 그런 꿈에서 먼 곳으로 둘러가곤 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럴 때 마음 놓고 한 판 퍼질러 울어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어떤 허가 보증서를 손에 쥔 것같아 마음이 편해진다.

윗글을 읽다가 문득 신경림의 시「갈대」을 떠올렸다.
「갈대」의 울음은 삶의 본연에 고인 쓸쓸한 슬픔이라는 점에서 윗글의 동적인(?) 울음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어떤 울음이건 저마다의 절실함을
담고 있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슬픔이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지만
아름다움은 아련한 슬픔과 종종 통해 있다고 믿는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기도 하듯이.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의 시「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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