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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내가 읽은 쉬운 시 34 - 정희성의「진달래」

by 장돌뱅이. 2015. 11. 18.



텔레비젼 드라마 「송곳」의 주인공이 말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고.
그 말은 뒤집어도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풍경이 변하지 않았다면 서있는 곳은 여전히 같은 것이라고.

45년이나 흐른 '전태일의 늦가을'에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시,「진달래」를 읽는 이유가 되겠다.
바스라질 듯 낡은 시집의 책장을 다시 조심스레 넘겨가며.


   잘 탄다, 진아
   불 가운데 서늘히 누워
   너는 타고
   너를 태운 불길이
   진달래 핀다
   너는 죽고
   죽어서 마침내 살아 있는
   이 산천
   사랑으로 타고
   함성으로 타고
   마침내 마침내 탈 것으로 탄다
   네 죽음은 천지에
   때아닌 봄을 몰고 와
   너를 묻은 흙가슴에
   진달래 탄다
   잘 탄다, 진아
   너를 보면 불현듯 내 가슴
   석유 먹은
   진달래 탄다


'7080'의 감성이 그다지 상투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우리가
생각만큼 먼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님을 깨우쳐주는 진부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에 읽었던 또 다른 글을 그의 삶에 부쳐본다.

   학문에서든 역사에서든 사회에서든, 인간사에서의 진보는 기존질서의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일에 스스로를 제한시키지 않고 현존질서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의지하고 있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전제들에 대하여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인간들의 그 대담한 자발성을 통해서 주로 이루어진 것이다.
                            -E.H. CARR, 『역사란 무엇인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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