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가 있던가?
4일의 연휴를 아내와 함께 "놀고 걷고 마시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보냈다.
아직 문득 문득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기도 하면서
영화 속 대사를 흉내내기도 하면서.
"괜찮아. 가슴이 아프다는건 노력한다는 거니까.
때론 사랑하다가 균형을 잃지만 그래야 더 큰 균형을 찾아가는 거니까."
연휴 마지막 날 일요일의 새벽은 짜릿했다.
U-20 월드컵에서 젊은 청년들이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4강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가 끝나고 밤을 꼬박 새운 아내와 한강변으로 나가 걸었다.
초미세먼지의 예보가 있다지만 아침 강변의 공기는 쾌적하게 느껴졌다.
이틀 전에도 한강변을 걸었다.
비가 온 뒤라 공기는 더 없이 맑았고 시야는 끝간 데까지 터져 있어 먼산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늘엔 비를 내리고 가벼워진 몸집의 솜구름들이 바람에 빠르게 걷히고 있었다. 비에 씻긴 강변의 풀은
무성한 초록으로 웃자라 있었고 강물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유달리 밝게 빛나는 오후였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 날 더욱 즐거워질 수 있는 쉬운 방법 중의 하나는 아내와 걷는 일이다.
목표는 이태원역.
걸어서 두 시간 정도의 거리였지만 쉬엄쉬엄 걷느라 세 시간 가까이 걸렸다.
수고한 우리 몸에게 주는 선물은 이태원역 4번 출구 가까이 있는 "쏭타이"의 태국음식으로 정했다.
아내도 나도 태국음식을 좋아하는 터라 일주일에 세 번 노노스쿨을 오가며 자주 봐둔 식당이었다.
밤의 "쏭타이"는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밝은 낮에는 가볍고 상큼한 분위기였다면 어둠과 인공의 빛의 어울리는 저녁에는
의자를 마주 앉은 사람 쪽으로 바짝 끌어당겨야 할 것 같은 차분함과 다정함이 있었다.
벽의 그림이 태국과는 상관없어 생경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이곳이 방콕의 스쿰윗 (SUKHUMVIT)거리가 아니라
한국의 '인종 용광로'인 이태원이니 그 정도의 일탈?쯤이야 편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첫 메뉴는 당연히 태국을 대표하는 맥주 "비아씽(싱하맥주 BEER SINGHA)!"
오래 전 뉴욕을 여행할 때 한 식당에서 아시아를 많이 여행했다는 옆자리의 미국인이 물은 적이 있다.
"삼성과 현대가 있는 코리아가 왜 맥주는 그렇게밖에 못 만드냐?"
그에게 '아시아의 맥주 중 당신은 어느 것이 제일 좋더냐?'고 되물었더니 그가 망설임 없이 외쳤다.
"비아씽!"
"쏭타이"의 음식은 전체적으로 한국식 재료와 맛이 가미되어 태국 현지의 맛과는 차이가 있으나
태국과 한국 사이의 비행기로 5∼6시간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를 고려하면 무난한 편이었다.
팟타이(ผัดไทย FRIED NOODLE).
어쩌면 여행자에게 가장 널리 알려졌다고 할 수 있는 태국식 볶음 국수.
맵지 않고 고수 같은 향료의 냄새가 없이 달작지근하고 땅콩 가루까지 섞여 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음식이다.
뿌팟퐁커리(ปูผัดผงกะหรี่ FRIED CRAB WITH CURRY SAUCE)
'뿌'는 게, '팟'은 볶다, '퐁커리'는 커리라는 의미로 "뿌팟퐁거리"는 '게를 커리에 볶아낸 요리'다.
원래는 게살과, 부드러운 코코넛크림과 달콤한 커리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파 마늘 양파 등과
어울려 매혹적인 맛을 내는 음식이지만·····.
역시 이것도 '본토' 맛에는 못 미치지만(혹은 많이 다른 음식이지만) 그래도 밥 한 공기 곁들이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솜땀(ส้มตำ PAPAYA SALAD)
"이싼"은 태국의 북동부 지역을 일컫는 이름이다. 태국에서 가장 개발이 더딘 지역이지만 독특한 음식 문화를 지녀,
우리가 접하는 태국의 많은 음식들이 이곳에서 비롯되었다. 솜땀이 그렇다. 솜땀은 태국에 가면 길거리 노점상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태국 대표 음식 중의 하나로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태국의 김치'이다.
실제로 우리의 김치 만큼이나 다양한 종류의 솜땀이 존재한다. 같은 종류라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보통은 그린 파파야를 채썰고 말린 새우, 땅콩, 토마토, 라임, 설탕, 피시소스 등으로 장식과 양념을 하거나 버무려 낸다.
기름기를 씻어주는 개운한 맛 때문에 닭튀김이나 돼지고기 구이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쏭타이"에서는 솜땀만을 주문했는데 아예 닭튀김과 함께 나왔다.
오래간만에 태국 음식을 먹으니 아내도 나도 '태국 지수'(태국을 여행하고 싶은 정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연휴 기간 동안 집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올 한 해 내 일상의 중심은 요리에 있다.
노노스쿨의 수업에 집중하면서 기능적으로, 인문학적으로 음식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싶다.
먼저 신김치두부조림
"최고의 요리비결" 책을 참고하여 신김치를 특히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만든 음식이다.
-소금과 후추가루로 밑간을 한 두부에 녹말가루를 입혀 식용유와 들기름에 굽고
-마늘을 기름에 복다가 신김치를 넣어볶고 설탕과 물을 조금 넣어 끓이다가 들기름으로 볶아 두부 위에 얹어 내면 끝.
칼국수
노노스쿨에서 배운 대로. 아내가 좋아하는 감자도 채를 썰어 고명으로 얹어보았다.
돌려깍기와 달걀 지단의 부치는 기능의 진일보를 느꼈다.
된장찌개
언제부터인가 사위의 '엄지척'에 시나브로 나의 시그니쳐 메뉴가 되었다.
된장찌개도 얼마나 다양한가. 모든 게 그렇듯 제대로 알려면 요리의 세계도 끝이 없이 넓다.
견과류쌈장
된장에 매실청과 참기름, 그리고 견과류를 볶아 다져 넣은 쌈장.
만들기가 매우 간단하다. 오이나 당근 등의 야채를 찍어 먹는다.
파전
비오는 날의 무적, 파전!
노노스쿨에서 배운 오이소박이를 만들고 남은 쪽파로 만들었다.
노노에서 배운 오이소박이는 나박김치와 함께 최근 한두 달 사이에 번갈아가며 우리집 밥상에 올리는 메뉴가 되었다.
토마토달걀볶음
텔레비젼 프로 "알토란"에서 보고 아침 식사 대용으로 만들었다.
요리책, 요리방송,요리블로그 등등이 흔하게 넘쳐난다.
김치계란파죽
미국에 있을 때 주말마다 아침으로 죽을 끓인 적이 있었다. 죽만 소개된 책도 구비했었다.
서양식 아침 대신 우리 나라식 아침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우선 죽은 찬밥과 남은 식재료를 정리하는 데 으뜸이다.
어쩌다 내가 음식에 취미를 가지게 되었을까? 스스로 생각해 봐도 신기하다.
인생은 조금씩 빗나간다는 말과 인생엔 무슨 일이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 이럴 땐 같은 의미일 수도 있겠다.
분명한 건 부엌에 서있는 동안은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성취감과 음식을 앞에 둔 아내의 미소를 떠올려보는
즐거움이 충만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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