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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봉준호의 「기생충」

by 장돌뱅이. 2019. 6. 4.




2007년 워싱턴포스트는 시민들의 예술적 감각과 취향을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가인 조슈아 벨 JOSHUA BELL을 길거리 악사로 변장 시켜 
워싱턴 시의 한 지하철역에서 연주를 하게 한 것이다.
그는 수십 억원이 넘는 명품 악기 스트라디바리우스 STRADIVARIUS를 들고 한 시간 가까이 연주를 했다.
그 시간 동안 약 천여 명의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갔지만 1분 이상 머물러 음악을 들은 사람은
겨우
10명 미만이었고, 27명이 32달러 17센트의 돈을 놓고 갔다고 한다.
이 실험을 하기 이틀 전 보스턴에서 열린 조슈아 벨의 연주회는 최하120불부터 시작하는 관람권 전석이 매진된 바 있다.

한번으로 실험으로 복잡한 사람들의 속내를 단정하는 것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사람들에겐 반드시
음악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감성으로 값비싼 콘서트장에 간다기보다
연주자와 연주 장소의 브랜드 가치를 소비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를 두고 대중의 예술 소비의 부박성으로 결론짓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연주 장소와 브랜드 자체가 주는 '판타지'의(?) 경험도 분명 유효하고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봉준호의 작품 「기생충」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다.
영화진흥위원회는 6월3일 17시 현재 「기생충」이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딸아이가 예매를 해주어 아내와 나도 그 통계치의 일부가 되었다.

"깐느"라는 포장이(?) 없어도 믿고 보는 봉준호 표 영화라 가보았을 터이지만 
딸아이와 대화 중 「기생충」이 등장하고 어느 때보다 빨리 예매까지 이어진 데는 
아무래도 "깐느"에 이은 온갖 매스컴의 보도도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아내와 슈아 벨을 이야기 했다.
'깐느'라는 브랜드 후광에 힘입어 서둘러 '보스턴 연주회'(극장)에 가고 있지만
'지하철 역의 조슈아 벨'도 지나치지는 말자고 공연한 결기 같은 것도 세워보면서.

극장에서 나오니 이미 늦은 밤이었다. 곧장 통닭집으로 자리를 옮겨 아내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기생충」의 감동을 정리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다는 핑계로.
영화 감상을 아내가 간단하게 정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꽉찬 느낌의 영화!"
디테일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 구성의 완결성을 말하는 것이겠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이 산다.
가진 자들의 평온한 일상의 '지하'에는 '무말랭이 말리거나 행주를 삶는' 듯한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 산다.
그들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계획 - 바로 '무계획'을 계획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기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전근대적인 모르스부호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다.
'선을 넘지 않는 한' 그 모든 존재 방식에 가진 자들은 무지하거나 무관심하거나 관대하기까지 하.
    
영화는 가진 자들의 천박함이나 탐욕을 드러내지 않는다. 비아냥거림도 없다.
가진 자들은 '돈이 다리미로 구김살을 펴주어' '착하고 순진하고 꼬인게 없다'.
다만 부잣집의 지하에는 비밀이 많을 뿐이라고 한다.

그런다고 못 가진 자들의 도덕적 청빈함이나 당당함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을 것"이라며 주먹을 들지도 않는다.
가진 자들의 위선 보다 오히려 못 가진 자들의 '위악'이 영화를 끌어간다.
그럼에도 혹은 그래서 세상은 충분히 끔찍하다. 페이소스가 더 짙다. 

영화의 마지막, 가난한 집 아들이 여전히 다시 처절한 비극의 자리에 생의 똬리를 틀 수밖에 없는아버지에게 말한다.
"다시 만나는 그날이 오기까지 건강하시라."
그러나 그 말은 희망의 다짐이거나 화해의 제스쳐가 아니라 또다른 '무계획을 계획'하는 말로 다가왔다. 
위조한 서류를 들고 가정교사자리를 찾아갈 때 아들의 존재는 주인집 높다란 담 아래 너무 작은 존재였으니까.
센 밤비는 주인 가족에게는 캠핑에서 철수해야 하는 '엄청난 재난'이었지만,
송강호 가족에게는 홍수에 떠내려 보내그뿐인 엉망의 세간살이를 쳐다보며 담배를 피우거나
대피소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는 '흔한 일상'이었으므로.
 
술을 마시는 도중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화가 어땠어?"
아내가 대답했다.
"너무 좋았어. 고마워 예매를 해줘서."
그리고 한걸음 더 나갔다.
"아이 우리가 봐줄 테니까 너네도 꼭 봐라. 바빠도 볼 건 보고 살아야지!"

아무래도 「기생충」 덕분에 이번 주말 연휴에는 한번 더 손자 친구와 놀 기회가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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