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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차(茶)에 대한 주절주절

by 장돌뱅이. 2019. 5. 21.

곡우(穀雨)의 곡은 '곡식 곡'자이다. 따라서 곡우는 '곡식을 위한 비'가 내리는 날이다.
본격적인 한해 농사가 시작되는 절기라는 의미이겠다.
봄비가 잘 내리고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곡우 무렵은 차(茶)를 만드는 시기
이기도 하다.
최상의 차는 이때 거둔 어린 찻잎으로 만들어진다.
첫물차는 곡우 며칠 전에 따서 만드는 '우전(雨前)차'로 맛과 향이 가장 뛰어나다.
'두물차'는 곡우에서 입하 사이에 아직 잎이 다 펴지지 않은 찻잎으로 만든다.
참새 혀처럼 작고 가늘다 해서 '작설(雀舌)차' 혹은 '세작(細雀)차'라고 한다.
이후 여름으로 가까이 가면서 거둔 중작, 대작 등이 있다.
이어 '세물차', '네물차'로 가면서 점차 품질이 낮은 차가 된다.  
발효도에 따라서는 백차, 녹차, 홍차, 우롱차, 홍차, 흑차(보이차)로 구분되기도 한다.

사실 내게 차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음료로서
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구태여 기억해 본다면 군대 시절 겨울 야간 보초를 서고 돌아왔을 때 마셨던 뻬치카에
끓인 칡차나
강원도 아침가리에서 대학 친구와 민박을 할 때 주인이 끓여준 인진쑥차가 있다.
베트남 호이안(HOIAN)에 있는 청각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찻집 "REACHING OUT TEA HOUSE"도 생각난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은 차 자체보다 황량한 군 시절 동료의 따듯한 배려의 마음이나
친구들과의 흥겨운 어울림,
혹은 이국의 찻집에 앉아 아내와 조용히 거리를 내다보던
고즈넉한
시간을 기억한다는 것이 맞겠다.

차에 대한 한 가지 기억이 더 있다면 버린 기억이다.
주위에서 선물을 받거나 여행을 할 때 기념품으로 산 차들은 끝까지 먹어본 적이 없다.
대부분 유효기간이 지나 정리할 때마다 버려야 하는 품목 중의 하나였다.


* 위 사진 : 마리아쥬 프레르 - 인공향의 차(茶)지만 그것으로 유명하다는 프랑스산 차.
지인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인데 정리를 하다보니 유효기간 만료로 이번에 폐기했다. 
개봉을 했다면 2년 정도가 시한이라고 한다.



노노스쿨 차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집에 있는 차를 가져와 나누어 마셔보자고 제의를 했다.
동료 학생들이 많은 종류의 차를 가져왔다.
녹차 종류는 물론 돼지감자 우엉차 등을 비롯하여 초석잠이라는 나로서는 처음 보는 차까지.

옆자리의 한 분이 서호(西湖) 용정차(龍井茶)를 가져와 나누었다. 저장성 항저우 특산인 용정차는
중국 10대 명차중의 하나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짙은 향, 부드러운 맛, 비취 같은 녹색 그리고
아름다운 잎새' 라는 네 가지 아름다움
(四絶)을 지닌 차라고 한다.
과연
차맛을 모르는 나의 입맛에도 순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은은한 향이 느껴졌다.
접시 위에 찻잎을 펴서 늘어놓으니 파릇파릇한 새싹 같은 모양새가 앙증맞아 보였다.


*위 사진 : 서호 용정차


사람들은 차를 왜 마실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커피를 마시면서는 분위기와 향, 그리고 맛에 집중하는데, 차를 마시면서는
거기에 더하여 몸의 어디에 좋다더라 하는 식으로 건강과 관련을 짓는다는 점이다.
요즈음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만 그래온 것도 아닌 것 같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 남원에 주둔하고 있던 명나라의 장수 양호(楊鎬)는 서울로 올라와
선조에게 토산차를 바쳤다. 조선사람은 차를 잘 마시지 않는다는 선조의 말을 들은 양호는
중국사람들은 기름기를 많이 먹어 이를 풀어야 하기에 하루라도 차를 마시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했다.

송나라의 소식(蘇軾)은 차가 근심을 녹이고 심신의 응어리를 풀어준다고 했으며
『본초강목』에는 차를 오래 마시면 창자를 이롭게 하고 설사를 멎게 하며 열을 쫓고
눈을 밝게 하여 잠을 쫓는다고 하고, 반드시 끓여 먹어야한 효험이 난다고 했다.
또 당나라 때 『다보(茶譜)』라는 책에는  "한 냥을 물에 달여 먹으면 오래 된 병이 낫고,
두 냥이면 눈병이 나으며, 세 냥이면 살이 단단해지고 네 냥이면 뼈가 튼튼해진다"고 했다.

나는 차와 커피는 물론 세상의 모든 음식은 보약이며 동시에 독약이라고 생각한다.
맛있고 즐겁게 먹으면 보약이 되고 거기에 절제가 따르지 않으면 독약이 될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들의 생장 내력에 대한 통찰이나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소통 이전에
'몸에 좋은 것'이나 '맛이 좋은 것'에만 탐닉하는 세태는 생경스럽다.
영혼과 육신의 건강을 위해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항은 늙어감에 대한 순응과
"어쨌거나 죽는다(DIE ANYWAY)."는 자명한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 위 사진 : 보성의 햇녹차


이전의 글에서 차를 매개로 한 초의선사와 추사의 우정을 쓴 바 있다.
아내에게 수업시간에 마신 용정차를 이야기 하자 법정스님의 책에서 그 차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고 찾아주었다.
읽어보니 역시 차 이야기와 함께 차를 사이에 둔 사람, 금당(최규용)과의 이야기였다.
금당은 우리 차의 맥을 되살리고 다도 정신을 일구려고 애써 현대 한국의 다성(茶星)으로 불리는 분이다.

작은 찻잎 몇 개를 따뜻하게 우린 물이 만들어주는 맑은 기운, 그런 시공간을 채우는 언어와 교감,
그리고 훗날까지 이어지는 기억.
알맞게 우려낸 차처럼 깊은 맛이 우러나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
만나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래야 부족한 나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어느 해 겨울 불일암의 다실
에서였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해질녘 금당 선생이 찾아오셨다. 
주방에 내려가 함께  저녁을 먹고 다실에 들어와 밤이 이슥하도록 차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를 마셨다.
그때 가져온 차가 납작한 곽에 든 용정차였는데, 향기와 맛과 빛깔을 제대로 갖춘, 눈이 번쩍 뜨이는 일급품이었다.
보통 차는 두세 번 우리면 그것으로 그만인데, 그 용정차는 대여섯 번을 우려도 한결같은 맛과 향기였다.

후로는 같은 용정차인데도 그런 차를 접하지 못했다.
좋은 차는 좋은 물을 만나야 제맛을 만날 수 있다. 사람도 좋은 짝을 만나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문득 차를 마시고 싶다. 홀로 마시는 차를 신(神)이라고 했던가. 
                                                 -법정의 책,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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