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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공싱차이에는 없고 깡꿍과 팍붕에 있는 것

by 장돌뱅이. 2019. 5. 2.

이마트에 갔더니 공심채(空心菜)가 눈에 띄었다.
중국어로는 "공싱차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Morning Glory (혹은 Water Spinach)"라고 한다지만 아내와 나에게는 "깡꿍(Kangkung)"이나 "팍붕(ผักบุ้ง)"이란 단어에 친숙하다.
깡꿍은 인도네시아 말이고 팍붕은 태국 말이다.

나는 팍붕보다 깡꿍을 먼저 알았다.
90년 초 회사일로 인도네시아에 주재를 할 때 처음 먹어보았다.
첫 기억은 언제나 강렬한 법이어서 식당 이름까지 지금도 기억한다.
자카르타의 잘란 바뚜 뚤리스(Jl. Batu Tulis)에 있는 식당 뽄독 라구나(Pondok Laguna)였다.

*위 사진 : 자카르타의 식당 뽄독라구나(PONDOK LAGUNA)의 내부 풍경

인도네시아 생활이 채 한 달도 되기 전 회사의 현지인들이 안내를 해서 뽄독라구나에 갔다.
그때 직원이 골라준 음식 중의 하나가 바로 깡꿍이었다.
얼마 뒤 나는 가족들에게도 깡꿍을 소개해 줄 수 있었다.
우리와 함께 살았던 현지인 가사도우미에게 말을 했더니 자신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흔한 음식이어서 어렸을 적부터 먹어온 음식이라는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아내와 딸아이 모두 좋아했다.

지금도 자카르타에 갈 때면 뽄독라구나는 빼놓지 않고 들리는 곳이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깡꿍 고렝"(깡꿍 볶음)과 태국의 "팍붕파이댕"(팍붕 볶음)은 우리 가족이 두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매 끼니에 빠지지 않는 메뉴가 되었다.

*우리나라 된장과 액젓, 마늘을 넣어 내가 만든 팍붕파이뎅.

귀한(?) 깡꿍을 이마트에서 보았으니 한번 해 먹어야 했다.
장바구니 속에 깡꿍을 본 아내도 반색을 했다.
하지만 간단한 조리법에 비해 필수적인 양념이 문제였다.마늘과 굴소스는 냉장고에 있는 것이지만 태국식 된장 '따오찌여우'와 피시소스인 '남쁠라'가 문제였다. 임기응변으로 우리나라 된장과 까나리 액젓으로 대체했다. 생각보다 간이 세졌으나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아내와 밥에 팍붕을 얹어 먹으며 우리를 도와주던 가사도우미 까니(KANI)양을 이야기했다.
그때 20세의 어린 아가씨였으니 지금은 초로의 아줌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귀국하던 날 아내와 부둥켜안고 많이 울던 중부 자바의 솔로(SOLO) 출신의 순박한 처녀.

아내와 내가 먹는 깡꿍 혹은 팍붕엔 그렇게 인도네시아 직원의 상냥한 목소리와 식당 뽄독라구나의 북적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던 때의 설렘과 까니 양의 손맛, 그리고 아내와 내가 여행을 하며 발을 디딘 태국 여러 곳의 기억이 30년이란 시간과 함께 녹아 있다.

추억과 교감할 수 없는 음식은 중요한 맛의 한 가지가 빠져 버린 것이라 믿는다.
같은 채소이지만 공심채나 공싱차이, 혹은 모닝글로리로 부르면 그 맛과 기억이 살아오지 않는 이유이다. 음식이 더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노동의 땀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 함께 하는 가족, 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시간" 등의 기억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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