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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커피와 물

by 장돌뱅이. 2019. 3. 19.





커피는 물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맛과 가치가 현현(現) 된다.
커피의 종류와 개인의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인(아메리카노?) 경우
커피 한 잔 속에 커피의 양은 1∼1.5%이고 98.5% 이상이 물이라고 하니
커피의 탈(내릴) 때 커피 자체의 품질 이상으로 물의 중요성도 강조되어야 당연하겠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육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다학(茶學) 전문서인 다경(茶經) 을 집필하였다.
거기에 찻물의 선택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산수가 제일이고, 강수는 중간, 정수가 가장 못하다(山水上, 江水中, 井水下).
산수는 젖을 짜는 것과 같이 돌 못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이 좋으며(基山水, 揀乳泉, 石池漫流子上) 
용솟음치듯이 급히 흐르는 물을 자주 마시면 사람 목 부분에 병이 생길 수 있다.
흐르지 않는 물도 마시지
않는 게 좋다. 강변의 물은 가급적 먼 곳의 물을 긷도록 하고,
우물 물은 사람들이 많이 긷는 우물에서 얻어야 한다.


읽고 보니 70년대 설악산 등반에서 경험 있는 선배가 알려준 좋은 식수를 얻는 팁과 비슷하다.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국립공원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산에서 취사와 야영이 가능할 때였다.
천불동 계곡을 오르다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계곡물을 떠서 밥을 지으려 할 때 한 선배는
"계곡 본류는 윗쪽에서 탁족하는 사람들의 발 씻은 물이니 피하고 가느다란 지류에서 떠오되
가급적 멀리 올라가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물을, 그것도 바위틈에서 조금씩 나오는 물이 좋다"고 알려주었다.
육우의 표현대로 하자면 "젖을 짜는 것과 같이 돌 못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을 떠오라는 말이겠다.

수백년 전 육우의 좋은 찻물에 관한 충고는 크게 보면 차의 일종인 커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물이 옛날과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불과 칠십년 대까지 참고할만 했던 육우의 충고는 이제 변해버린
계곡물과
강물과 우물물로 인해 더 이상 유효해 보이지 않는다. 사상 최악으로 온 국토를 뒤덮었던 미세먼지들과
미세플라스틱에 온갖 쓰레기들의 범람으로 자연으로부터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수를 얻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커피 강사는 제주도에서 나는 우리의 '자랑스런' 생수를 커피 내리는 물로 추천 해주었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은 위대한 것이지만 그렇게 탁한 공기와 오염된 물을 그림자로 남겼다.
그리고 우린 어쩔 수 없이 그 속에서 숨쉬고 마시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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