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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무슨 말을 할까요?

by 장돌뱅이. 2019. 1. 4.

친구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노는 데 있어 점차 주도권이 친구 쪽으로 기울어 간다. 
낚시 해요. 기차 가지고 놀아요. 숨바꼭질 해요. 버스놀이 해요. 마트놀이 해요.
순간순간 놀이를 마음대로 바꾸고 노는 방식도 자기 하자는 대로 따라주어야 한다.
낚시는 친구가 지시하는 고기만 잡아야 하고, 마트에서는 친구가 주는 과일과 채소만 받아야 한다.
숨바꼭질도 친구가 지정해 주는 장소에만 숨어야 해서 숨바꼭질의 본질을 훼손하지만
친구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근자에 들어 친구의 선호도가 타요버스나 뽀로로에서 트리케라톱스와 안킬로사우루스,
브리키오사우루스 등의 공룡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친구에 비해 나의 공룡 이름을 외우기는
시원찮지만
'혀돌리기운동'이라고 생각하면가까스로나마 친구 수준을 따라갈 생각이다.

하지만 사고력과 어휘력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툭툭 던지는 친구의 질문은 유쾌하고 즐겁게 당황스럽다.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준다는 사실을 영리하게 자각하고 있는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날 아침 산타할아버지가 드디어 선물을 주었다.
잠을 자는 밤 사이에 살짝 두고 가는 것으로 친구가 착한 아이라는 걸 증명해 준 것이다.
그것도 자기가 갖고 싶었던 선물이라서 눈이 휘둥그레해진 친구가 흥분이 가라고 나자 물었다.

"산타할머니는 어디 있지?

(나는 산타할머니는 선물을 포장하고 산타할아버지가 나누어준다고 설명을 했지만
친구는 납득이 가지 않는 표정이었고 나도 내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친구가 좋아하는 야외산책 시간이 미세먼지로 자주 취소되었다.
엄마는 친구에게 내일은 미세먼지가 없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하자고 했다.
벽에 걸린 십자가를 향해 친구는 엄마를 따라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끝난 뒤 아직 모은 손을 풀지 않은 친구가 십자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왜 대답을 안 하지?"

(아무래도 나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쳐 주셨던 수녀님께 여쭈어봐야겠다.
스승님은 친구의 '종교철학적인' 물음에 어떤 답을 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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