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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다시 보다 - 마당극『춘풍이 온다』

by 장돌뱅이. 2018. 12. 30.

지방에서 근무하던 1980년 대 중반 우연히 마당극에 참여한 적이 있다.
몸을 담고 있던 독서회에서 뭔가를 기념하자는 취지로 학예회 수준의 '판'을 벌였던 것이다.
그래도 대학생과 일반 젊은 관객까지 제법 들어와 공연장의 열기는 그럴싸 했다. 

문제는 배우 쪽에 있었다. 연극에 대한 경험은커녕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는 회원들인데다가 
한자리에 모여 연습 시간도 충분치 못한 탓에 극의 진행은 매끄럽지 못 했다.
그런데 그 부족함이 오히려 관객들의 흥을 돋구는 듯했다.
나아가 관객들은 추임새와 격려로 분위기와 극을 이끌기도 했다. 
관객들이 전문적인 연기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판' 자체에 대한 공감대로 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마당극에서 내가 맡은 역은 강도 - 시골에서 올라와 갖은 고생을 다하며 노력했지만 실패만을 겪은 
끝에 좌절하여 범죄를 저지르게 된 - 였다.
이런 내력을 공연에서 상투적이지 않은 재담으로 풀어내는 게 과제였다.
우리는 이 문제를 김지하의 담시(譚詩) 의 일부를 차용해서 그곳 지방 도시에 맞게 변형하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어본 김지하의 담시는 요즈음의 상황에 견주어도 특별히 옛날 느낌이 들지 않는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시 속의 한 청년은 시골서 올라와 소같이 일잘하고 양같이 온순해서 법이 없이도 살 만하지만

만사가 되는 일 없이 모두 잘 안돼 / 될 법한대도 안돼 / 다 되다가도 안돼
장가는커녕 연애도 안돼 집장만은커녕 방세 장만도 제때에 안돼
밥벌이도 제대로 안돼 취직도 된다 된다 차일피일하다가는 흐지부지 그만 안돼
빽 없다고 안돼 학벌 없다고 안돼 보증금 없다고 안돼 국물 없다고 안돼
밑천 없어서 혼자는 봐주는 놈 없어서 장사도 안돼 뜯기는 것 많아서도 안돼
울어봐도 안돼 몸부림쳐봐도 안돼 지랄발광을 해봐도 별수 없이 안돼
눈 부릅뜨고 대들어도 눈 딱 감고 운명에 맡겨도 마찬가지로 안돼
(중략)
쌀값 똥값 물값 불값 줄레줄레줄레줄레줄레
방값 옷값 신값 약값 반찬값 장값 연탄값 줄레줄레줄레줄레줄레
술값 찻값 신문값 책값 이발 목욕 담배값 줄레줄레줄레줄레
그위에 축하금 그위에 부조금 그위에 기부금 그위에 동회비 그위에 교통비
그위에 빚쟁이 그위에 위에위에 이리저리 걸고감아 온몸을 칭칭칭칭
잔뜩 동여놓으니 아이구 / 아이구 이것을 어쩔 것이냐 통뼈아닌 다음에야
쥐꼬리같은 벌이나마 해보겠다고 미쳐 싸돌아 안다니고 제놈이 어쩔 것이냐
눈발에 미친개 같이 꽁지에 불단 범새끼 같이 그저 줄창 싸돌아다녀 보는데
한발딛고 한발들고 / 한발들고 한발딛고 / 이발 딛으면 저발들고 / 저발들면 이발딛고
이리떼둥 저리띠뚱 / 팔딱팔딱 강중강중 / 총총거리며 나간다
종로 명동 무교동 다동 / 부동산 보험 무진 무역 / 사환 급사 소사 수위 / 모조리 한번씩 다 지내고
영등포 시흥 만리동 을지로/ 방직 주물 제당 피복/ 직공 화부 발송 시다 / 싸그리 조금씩 다 들러보고
구파발, 창동으로 장안평, 과천으로 / 이태원꿀꿀이장사 답십리 시레기장사 
남대문 돛배기장사 동대문 복어알장사 / 광화문 굴러대장사 무교동 뻔대기장사
공사판 흙짐지기 모래내 배추거간 영화판 엑스트라 용달사 짐심부름
좌충우돌 천방지축 허겁지겁 헐레벌떡 동서남북 싸돌아다니다
지치고 처지고 주리고 병들고 미쳐서 어느날 노을진 저녁때
두발을 땅에다 털퍼덕 딛고서 눈깔이 뒤집혀 한다는 소리가
에잇
개같은 세상!
                                           - 김지하의 시, 「비어 (蜚語)」 "소리내력(來歷)" 중에서 -     


일년에 서너 번씩 얼굴을 보는 부부 동반 모임에서 국립극장에서 공연 중인 마당극 『춘풍이 온다』 를 골랐다.
이유는 모두  "재미 있잖아!" 였다.  재미야말로 마당극이 대중들에게 심어놓은 덕목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예상과 기대대로 『춘풍이 온다』는 쉴 틈 없는 집단 군무와 재담, 기발한 소품 등으로 재미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고 더더구나 감동까지 이끌어내기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한 때 젊은 문화의 활기찬 상징이었던 마당극은 이제 쇠퇴한 기력이 역력하다.
마치 퇴물 가수의 경로 효도 잔치처럼 연말이 되어야 볼 수 있는 공연이 되었고
실제 관객의 연령대도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물론 쇠퇴의 의미가 단순히 공연 횟수의 축소나 관객의 고령화에만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마당극의 고갱이라 할 수 있는 현장성과 집단성, 그리고 무엇보다 나날이 복잡해져가는
현실에 내재한 본질적 모순을 드러내고 통렬하게 질타할 수 있는 표현 방식과 구성, 인물의 전형화를 향한
유기적 진화를 멈춘 채 7080의 방식을 기계적 답습·반복하며 '추억팔이'를 하고 있다는 데 있다.
본령은 실종 되고 형식만 남은, 신명은 사라지고 재미만 남은, 한풀이는 없고 재치문답만 남은 박제
- 그것이 오늘의 마당극의 모습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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