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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친구가 왔다

by 장돌뱅이. 2019. 2. 7.

잘 먹고 잘 노는 무한체력의 내 친구.
할머니가 만들어 준 미역국이 맛있다고 그릇도 마셔버릴 듯 호기롭게 들이키고
놀이 계단을 엎드리거나 누워서 내려오는 자신만의 '기술'을 반복하며 과시하기도 한다.

어린이집이 끝나고 올 때마다 15층의 집까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매일 걸어서 오른다.
15층까지 올라왔다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다시 오르는 경우도 있다.
무슨 이유인지 추측하기 힘들지만 못 말리는 체력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설날 연휴에 친구가 왔다.
친구는 세배라는 '개인기'를 선 보인후 바로 놀이 모드로 나를 몰아 세웠다.
처음에는 아내와 내가 스트레칭 할 때 사용하는 매트를 펼쳐 놓고 그 위에서 뛰며 놀았다.
그러더니 매트 위에 앉아서 어린이집에서 배운 종이를 찢는 놀이를 시작했다.
준비해 놓은 잡지를 가로세로로 찢은 종이가 수북히 쌓이자 이번엔 그 종이를 한 웅큼씩 집어
허공에 날리며 "펄펄 눈이 옵니다"란 노래를 불렀다.
나도 합창을 하며 종이를 친구의 머리 위로 뿌려 주었다.

다음엔 매트를 돌돌 말아서 김밥 만드는 놀이를 했다.
흰눈김밥, 딸기김밥, 토마토김밥 등등 친구가 생각나는 대로의 김밥이 탄생했다.
다른 식구들은 내가 말은 김밥과 친구가 만든 김밥을 먹어보는 시늉을 하며 맛을 평가해야 했다.
평가단은 매번 친구 김밥의 맛이 훨씬 맛있다고 손을 들어주었는데 짖궂은 할머니가 딱 한번 
"할아버지가 만든 김밥이 더 맛있네."라고 하자 친구는 무척 당황해 하며 잠깐 동안 횡설수설 하기도 했다.

친구는 재빨리 주제를 바꿔 아예 자신이 매트를 휘감고 데굴데굴 구르며 인간김밥
- 친구가 들어가면 '친구김밥', 내가 들어가면 '할아버지김밥'- 놀이를 시작했다.
서로 구르고 굴려주며 만든 김밥 속에서 친구는 앞선 기습적 패배를(?) 잊은 듯 깔깔깔 웃었다.

김밥놀이 다음엔 숨바꼭질이었다.  이 놀이는 모든 식구가  참여해야 한다.
특이하게 숨어야 하는 장소를 친구가 지정해주는 숨바꼭질이다.
숨바꼭질은 곧 호랑이 놀이로 진화하였다.
항상 술래인 친구가 호랑이가 되어 '어흥' 울음소리를 내며 다가오면 숨은 우리는
"무서워"를 외치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저녁을 먹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올 때 친구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엔 우리집에 와서 또 재미있게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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