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내가 읽은 글

나의 삶을 떠받쳐 준

by 장돌뱅이. 2020. 12. 9.


*클림트 「키스」(1907∼1908)


아내가 대장 내시경 검사 도중 조직검사를 받았다.
용종 몇 개라면 우리 나이에 흔해서 대수롭지 않지만 조직검사는 뭔가 심각한 상태를 상상하게 했다.
농담을 하고 산책을 하고 손자를 보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 속으로 혹시나? 하는 불길함이 불쑥불쑥 찾아들었다. 
"조직검사 했다고 다 암인가? 나도 두 번이나 했잖아?"
나의 경험과 말로 묵직한 분위기가 말끔하게 가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 일 없을 것이라 자꾸 반복하는 것이 오히려 걱정을 강조하는 꼴이 될까 해서 가급적 다른 이야기를 했다. 
영화를 보고 손흥민의 원더골도 봤다.
겉으로는 태연했어도 어쩔 수 없이 기도할 땐 더 절실한 마음이 되었다.

드디어 오늘!
의사와 마주 앉았다.
긴장하는 순간, '조직검사 결과 아무 문제 없습니다'라는 천국의 음성이 들렸다.
"고마워."
병원 문을 나서며 '나의 삶을 떠받쳐 준' 아내의 어깨를 꼬옥 안아주었다.
코로나 마스크만(?) 없었다면 클림트의 그림만큼 진한 키스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미세먼지가 가신 하늘이 눈부시게 맑은 아침이었다.


언젠가, 죽음의 예고가 우리 앞에 놓여질 것이다.
어떤 얼굴로 그를 맞아야 할까?
반가울 리는 없지만  좀 더 편안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침마다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 뿐이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부지런한 새들

가끔은 편지 대신
이슬 묻은 깃털 한 개
나의 창가에 두고 가는 새들
단순함, 투명함, 간결함으로
나의 삶을 떠받쳐 준
고마운 새들
새는 늘 떠날 준비를 하고
나는 늘 남아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이해인, 「새」-

'일상과 단상 > 내가 읽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퍼옴 <검찰 권력 해체를 촉구하는 작가 성명>  (0) 2020.12.18
이창동 감독의『버닝』  (0) 2020.12.10
11월의 식탁  (0) 2020.12.03
겨울이 서있다  (0) 2020.12.01
실패 없는 것만을 추구해선  (0) 2020.11.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