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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꽃 아닌 것이 없게 하소서

by 장돌뱅이. 2024. 5. 14.

아내가 다친 상처를 꿰맸던 실밥을 풀었다.
늙수그레한 의사는 덤덤한 말투로 '잘 되었다'고 아내를 안심시켜 주었다.

"축하해!"
"이게 축하할 일인가?"
나의 말에 겸연쩍어하며 아내는 웃었다.
"오월이니까."
나는 괜스레 생뚱맞은 말로 시인 흉내를 내보았다.

먼 곳 혹은 특별하거나, 진부한 일상과는 다른 것들에 높은 의미를 부여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완전히 그 미망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때로 무료하기까지 한 일상의 담백한 맛을 깨닫곤 한다.

봄이 지나가면서 때맞춰 이런저런 꽃들이 피었다가 사라진다. 목련에 개나리, 진달래와 벚꽃이 피는가 싶더니 철쭉이 피고, 지금은 등나무꽃과 정향나무꽃과 붓꽃과 수국과 해당화와 장미가 피었다. 낯선 곳에서 서성이지 않아도 아파트 화단에, 문화회관 앞에, 산책하는 강변과 호숫가에 산자락길 옆에 무더기로 혹은 한두 송이로 피어있다.

아내와 다시 그 흔한 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붙여가며 그 길을 걷게 되었다.
오월이 아니어도 축하할 일 아닌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슬픔 아닌 꽃은 없다

그러나 
꽃이 아닌 슬픔은 없다

눈물 닦고 보라
꽃 아닌 것은 없다

- 복효근, 「꽃 아닌 것 없다」 -

등나무꽃
정향나무꽃
붓꽃
해당화
장미

꽃 사진에 나의 칼림바 연주를 더했다. 세상엔 멋진 음악이 많을 터이지만 서툴러도 내 손을 움직여 만든 것은 이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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