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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하필 부처님 오신 날에

by 장돌뱅이. 2024. 5. 15.

그럭저럭 사는 거지.
저 절벽 돌부처가
망치 소리를 다 쟁여두었다면
어찌 요리 곱게 웃을 수 있겠어.
그냥저냥 살다보면 저렇게
머리에 진달래꽃도 피겠지.

- 이정록, 「진달래꽃」-

부처님 오신 날 아침.
시를 읽으며 '그래 모나지 말고 좀 너그럽게 살자' 혼자 다짐해 보았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길래 아침 산책을 했다.
햇빛이 하도 맑아 걷다가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맑은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사이 어느새 구름이 하늘을 채웠다.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와 달리 부부싸움은 예보가 없이 불시에 들이닥친다.
발단은 언제나 사소하지만 순식간에 열대폭풍우로 발달한다.  
이렇게 가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말이 어깃장 나가기도 한다.

오늘도 그랬다.
하지만 40년 동안 아내의 고지(?)는 굳건하여 난공불락이다.
나는 기껏 '3분 성질'의 재래식 공격과 작전상 진심 어린 '30분 사과'의 비효율을 반복했다.
아내와 다툼은 늘 단기전이다. 공격도 수비도 그렇게 강력하지 못하다.

이내 열대폭풍우가 오래전 기억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아내와 커피 한 잔을 더 나누고 아내는 붓글씨를 쓰고 나는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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