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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우리가 ···

by 장돌뱅이. 2025. 1. 5.

경복궁역 주변 횡단보도에서 집회 참석자들에게 "나눔문화"의 피켓을 나눠주는 일을 했다.
"나눔문화"의 회원인 딸아이는 손자저하를 축구시합에 모시고 가야 해서 우리가 대신하기로 한 것이다. 딸아이 대역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두세 시간 동안의 특별할 일이 있을 리 없는 단순 피켓 배포의 일이었다.
대부분 말없이 피켓을 받아가거나 '수고하십니다'나 '고맙습니다' 같은 인사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가끔씩 이 세상 어디나 그렇듯 '웃기는' 사람들의 접근도 있었다.

제일 먼저 다가온 사람은 내 나이 또래의 늙은 남자였다.
그는 "도대체 대통령에게 내란? 수괴?가 뭐야?"라며 아내에게 항의를 했다.
아내는 "예, 안녕히 가세요."라고만 했다.
그가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하며 주위를 맴돌아 내가 나서야 했다.
"아저씨랑 생각이 같은 사람들은 저기 광화문 역 근처에 있으니 그리로 가시지요."
겉으로는 친절을 가장할 수밖에 없어 속으로 말했다.
'수괴가 불만이냐? 다음번에 괴수라고 써주랴?'


옆을 지나가며 귓전에 "우리나라를 말아먹는 빨갱이 민노총 놈들!"이라고 얼토당토 않은 욕설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호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맞은편에 서있는 젊은이들을 보며 '쟤네 부모는 자식이 이런 데 오는 걸 알려나?' 하며 공연히 혀를 차는 부부도 있었다.
건너편 사람들이 들을 리 없으니 다분히 우리를 향한 말이었다.
어떤 여자는 유인물을 찢어 동그랗게 만든 쓰레기를 아내가 들고 있는 피켓 위에 놓고 총총 횡단보도를 건너가기도 했다.  
뜬금없이 다가와 "나는 윤석열이 너무 싫어요. 근데 이재명이도 싫어요. 둘 다 내려왔으면 좋겠어요. 그게 공평하지 않아요?" 하며 황당한 '공평'으로 비아냥거리는 중년의 아주머니도 있었다.

그들 면전에 못한 말을 이제야 글로 적어본다.
'그 X은 쓰레기 통에 버릴래도 쓰레기통이 아까운 X이야!'  

도대체 '그 X'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 치졸한 버팀의 끝에 있을 그 어떤 것을 기대하는 걸까?
정말 아직도 청사년의 '대박'이라는 주술을 믿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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