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는 열정적인 테니스 팬이다.
흔히 말하는 '버킷리스트'에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 직관'을 올려두고 있을 정도다.
메이저 대회는 매년 1월에 열리는 호주오픈으로 시작되어 봄에 윔블던과 파리오픈(롤랑가로스), 그리고 9월 경에 US오픈으로 이어진다. 9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 긴 테니스 '허기' 끝에 새해 벽두에 열리는 호주오픈에는 다른 메이저 대회보다 특별한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2025년 호주오픈은 12일에 개막이 되어 오늘 여자, 내일 남자부 단식 결승이 열린다.
여자는 벨라루스의 사발렌카와 미국의 키스, 남자는 이탈리아 얀니크 신네르와 독일 알렉산더 츠베레프간의 대결이다. 평소의 아내라면 이번 대회 최고의 대결인 스페인 알카라즈와 조코비치 간의 8강 대결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알카라즈의 승리를 열렬히 응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결승전에 이르도록 단 한 경기의 중계도 보지 않았다.
주요 경기가 우리 시간으로 대부분 저녁 무렵에 열려 시청을 하기에 좋았는데도 그랬다.
이제까지 아내가 어느 메이저대회든 결승에 이르도록 단 한경기도 보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여행 중에도 생방을 못 보면 재방송이라도 반드시 챙겨 볼 정도였으므로.
스포츠 중계를 보다가(아니면 오락프로들을 보다가도) 문득문득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하며 뉴스로 채널을 돌리거나 그러지 않아도 머릿속에 오만 생각으로 가득해서 경기가 집중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 역시 좋아하는 프리미어리그 본방을 '123' 이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 가끔씩 유튜브의 알고리즘 덕분에 보거나 손자 덕분에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123 계엄 이후 나와 아내의 마음은 놀람 (5%) +분노(80%)+무기력(10%)+일상(5%)이었던 것 같다.
무엇을 하건 그 충격의 둘레에서 목줄 매인 강아지처럼 맴돌게 되었다.
여행을 가서 잠시 잊자고 했지만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마다 서둘러 뉴스를 찍어 보게 되었다.
이 좋은 날들에 이 무슨 미친 나라인가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아니다! 지치지 말아야 한다!' 하며 마음을 추스른다.
무슨 뉴스가 또 속을 뒤집어 놓을까 염려하면서도 볼 건 봐야 하고 알 건 알아야 한다.
나는 군주도 아니고 입법자도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에 관한 글을 쓴다. (···) 내 의견이 공적인 일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아무리 미약하다고 해도 나는 한 자유국가의 시민이자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 그것에 관해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으므로 거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의무 역시 당연히 갖게 된다. (···) 누군가가 나랏일에 관해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나라는 끝장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위대한 선각자 장 자크 루소의 글을 읽으며 힘을 얻으려 애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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