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鄙陋)하다.
국어사전에서는 그 뜻을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라고 설명한다.
거꾸로 '누비(陋鄙)하다'라고 해도 같은 말이 된다. 합치면 '너절하고 더럽고 천하다'.
사전에는 그 말이 사용된 예문도 나와있다.
그러나 영상의 시대니 그 실제 예는 '내란의 그 X'과 똘마니들의 재판 뉴스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분노하다가 어처구니가 없다가 그런 걸 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TV를 끄게 되지만.

의원이니 요원이니 달그림자니 하는 서푼어치도 안 되는 말장난으로 책임을 부하에게 떠넘기려는 작태나 최근 '기억에서 찾을 수 없다'라는 시적인 느낌마저 드는 유체이탈적 발언까지······.
직위를 떠나 인간으로서 그들은 품격이란 말을 알고 있기나 한 걸까?
품격이 너무 어렵다면 조폭영화에 나오는 '가오'라도 없는 걸까?
'파렴치한 종북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던 1년 전 기세등등은 사라지고 드러나는 건 비루함 뿐이다.

1901년 제주도에 이재수(李在守, 1877년 ~ 1901)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천민 출신으로 관노(官奴)였다고 전해진다.
당시에 제주도는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리던 천주교 세력의 횡포와 악행, 이들과 결탁한 봉세관들의 가혹한 세금 징수로 민생은 파탄나고 백성들이 겪는 고통은 극에 달해 있었다.
도민들은 지역 향장(鄕長)인 오대현을 장두로 내세워 폐단의 시정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제주목사에게 제출하기 위해 5월 초 제주읍성을 향해 출발했으나 무장한 천주교 측이 이를 습격하여 장두인 오대현을 포함한 지도부를 체포해 갔다.

이때부터 이재수는 지도자로 전면에 나서 민군을 이끌게 된다.
이재수는 제주성에서 가까운 황사평에 진을 치고 성문을 걸어 잠그고 대포까지 설치한 천주교민과 대치 끝에 마침내 28일 입성하여 300여 명의 교민을 처형한다.
이후 신임 제주목사는 교폐(敎弊)와 세폐(稅弊)의 시정을 약속했고 이재수는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재수는 항쟁의 장두로서 시종일관 당당한 자세로 재판에 임하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최후 진술에서 "내가 죽인 것은 역적이지 양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의 여행기를 참조하기 바란다.
*2021.10.16 - [여행과 사진/한국] - 제주살이 14 - 대정 삼의사비(三義士碑)
제주살이 14 - 대정 삼의사비(三義士碑)
추사 유배지 근처 대정읍 인성리에 「제주대정삼의사비」가 서있다. 1901년 '이재수의 난'(일명 신축교란)을 주도하다가 처형된 세 장두(이재수, 오대현, 강우백)를 기리는 비석이다.비가 세워진
jangdolbange.tistory.com
내란 이후 우리나라 서울대와 하바드 출신, 검사, 판사, 총리,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군장성, 변호사, 종교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행태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과 품격은 없다. 오직 동물적 생존과 탐욕만 보일 뿐이다.
천민 출신의 이재수가 지녔던 보통의 상식과 자존을 바탕으로 한 품격과 대비된다.
이 글의 주제와 상관없는 샛길로 잠시 빠지면, 제주도 대정읍 인성리에 세워진 이재수 등을 기리는「제주대정삼의사비」 비에 새겨진 글은 요즈음 상황에 비추어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 세우는 이 비는 무릇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이다."
11월 29일, 서초역 8번 출구에 나갔다. 그것이 단 한 번의 결정적인 싸움이나 행동은 아니겠지만 이 한심한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아내와 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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