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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영화 <<허트 로커>>

by 장돌뱅이. 2026. 3. 22.

평소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올해 들어서는 영화 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손자 돌보기에서 벗어난 것이 한 이유겠다.
책을 읽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거의 매일 한두 시간 시리즈물이나 영화를 본다.

예전엔 큰 화면에 음향도 빵빵한 극장에 가야 영화를 집중해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필요하면 '잠시멈춤'이 가능하고 편한 자세로 볼 수 있는 OTT가 좋아졌다.
천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아직 보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이런 습관이 더 심화된 것 같다. 

연일 쏟아지는 이란전쟁 소식 때문인지 중동전쟁을 그린 영화를 클릭하게 되었다.

<<허트 로커(The Hurt Locker)>>는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폭발물 해체)' 팀의 일상을 그려낸 영화다.
'허트 로커'는 '벗어나기 힘든 고통이나 상황'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바그다드 시내 곳곳에 비밀스럽게 설치되어 어느 순간에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해체하는 임무는 극한의 긴장과 공포가 요구된다. 그러나 매일 매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심리적 압박과 고통이 반복되다 보니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라는 듯 일부 병사들은 폭탄 제거의 순간에도 태평스럽게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어떤 병사는 아예 보호복을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폭탄을 제거하는 무모함을 보이기도 한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마치 도를 닦는 무념무상의 수도자처럼 한치의 동요도 없이 폭탄을 제거하는 그의 익숙한 솜씨가 차라리 공포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전장에서 가장 '무모·용감'했던 병사는 무사히 귀국을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영위하는 일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마트의 다양한 제품 앞에서 어느 것을 사야 할지 서먹하게 서 있는가 하면 아내의 부엌일을 도와주면서 뜬금없이 폭탄이 터진 아비규환의 전쟁터 이야기를 태평스레 늘어놓기도 한다.
어린 딸아이와도 제대로 놀아주지 못한다.
끝내  자신이 유일하게 알고 익숙한 이라크 전쟁터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

영화 시작부에는 '전쟁은 마약과 같아서 치명적인 중독을 일으킨다'는 자막이 나온다.
전쟁의 참혹함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에 중독되어 가는  인간의 나약함과 상처받은 영혼, 그로 인한 자기 학대적 광기가 영화의 주제라는 암시일 것이다.

<<허트 로커>>는 이라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라크 전쟁의 성격과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에서 전쟁의 비인간성과 인간의 야만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70년대 말에 나온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나 <<디어헌터>>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이라크와 베트남을 바꾸어 놓아도 도시와 사막, 정글의 차이일 뿐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난 아침에 맡는 네이팜탄 냄새가 좋아. 그건 승리의 냄새지."
자세한 내용은 잊었지만 <<지옥의 묵시록>> 속에서 베트남의  한 마을을 초토화시킨 후 불타는 냄새를 맡으며 미군이 내뱉은 말은 지금도 기억 속에서 서늘하다.
러시안룰렛 게임에 생명을 걸어야 하는 끔직한 상황을 경험한 <<디어헌터>> 속 미국 병사들이 전쟁 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파멸하는 삶은  <<허트 로커>>의 병사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사실
전쟁이라는 엄청난 폭력 아래 일상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미군보다 그곳에서 살아온 이라크인(베트남인)들이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은 가해자인 미군의 영혼이 파괴되는 현장을 무심히 바라보는 방관자거나 타격을 가하려는 잠재적 '테러범(?)'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때릴 때 나도 손이 아팠어'라고 말하는 학폭 가해자처럼 영화는 미군들이 전장에서 받는 '두통 치통 생리통'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영화는 전쟁의 정당성이나 평화의 추구,  전장에서 꽃피는 휴머니즘을 가해자의 전유물로 그리면서(혹은 도외시하면서) 마지막에는 유일하게 피해자의 몫으로 남아야 할 고통마저 빼앗는 것이다.

영화 <<허트 로커>>는 2010년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6개 부문의 상을 받았다.
<<디어헌터>>는 5개 부문을 수상했고
<<지옥의 묵시록>>은 8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 2개 부문을 수상했다. 지금도 같은 전쟁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런 화려한 수상 이력의 영화들에 냉소적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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