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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위대한' 하루

by 장돌뱅이. 2013. 2. 11.

시를 읽었다.
설날 아침에 어울리는 편안한 느낌이 좋아서 나도 읽고 아내도 읽고 함께도 읽었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항아리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을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를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둘이는 일.

- 프랑시스 잠,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

모방은 "다른 것을 본뜨거나 본받음" 을 말한다. 한마디로 흉내내기다.
단순히 다른 어떤 것에 대한 맹목적인 모사나 복제, 나아가 마치 자기 것처럼 내세우는 표절은 바람직하지 못하겠으나, 올바른 본받음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 지망생들은 종종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하면서 글 쓰는 훈련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런 경우 모방은 창조에 선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프랑시스 잠이 말하는 '위대한 일들'은 사실 작은 일들이다.
우유를 담고 소를 돌보고 구두를 수선하고 씨를 뿌리고 달걀을 거두는......
대단한 결심도 아니고 거대한 성취도 아닌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이국에서 맞는 설날.
작년 추석처럼 일요일과 겹쳐서 여유롭게 명절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시인의 '위대한 일' 흉내내기 - 빈대떡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작년 추석에 이어 두번째다.
녹두를 불리고 씻고 갈아 고사리와 숙주나물, 신 김치와 돼지고기, 찹씰가루와 함께 반죽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내가 잡채를 만드는 옆에서 후라이팬에 기름을 치고 빈대떡을 부쳤다.

창밖으로 '해가 지는 저녁.
우리가 만든 단출한 음식을 놓고 아내와 와인을 나누었다.
'위대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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