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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신명나는 야구장

by 장돌뱅이. 2013. 7. 26.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조직적인 응원문화는
롯데의 팬들이 선도하여 시작된 것 같다.

운동장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신문지나 비닐봉지를 이용하여 응원소품을 만들거나
선수 개개인마다 응원가를 만들어 부르고(익숙한 대중가요의 멜로디에 노가바로)
상대팀 투수가 견제구를 던질 때마다 "(하지) 마! 마! 마!" 하는 함성을 지르는 등의.....

WBC와 올림픽에서의 선전과 더불어 프로야구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면서
이제 그런 식의 응원은 전 구단으로 확산되었다.

지난 몇년 사이 기아타이거즈의 열성팬이 된 딸아이와 함께 야구장을 갔다.
홈팀 넥센과의 경기가 열리는 목동구장이었다.
분위기는 텔레비젼을 통해보는 것보다 훨씬 더 열광적이었다.
딸아이뿐만이 아니고 옆자리의 젊은 아가씨들도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 채로 경기 내내 구호와 노래와 율동을 쉬지 않았다.
나는 딸아이의 채근에 자주 자리에서 일어나
어정쩡한 자세로 응원막대를 흔들거나
현장에서 배운 노래를 따라 불러야 했다.

"기아의 안치홍 안치홍 안타 치고 도루 하고......"
"이종범 이종범 기아 이종범......"

작년에 딸아이와 변모한 한국 야구장의 분위기를 나보다 앞서 경험한 아내가
미국 야구장의 분위기를 심심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보다 오랜 야구역사를  지닌 미국야구장에는, 적어도 샌디에고의
펫코파크 구장에서 본 경험 한도내에서는, 우리와 같은 응원문화가 없다.
전광판 조작으로 관중들의 (우- 하는 정도의) 함성 유도가 가끔씩 있을 뿐이다.
그것을 어떤 우열의 잣대로 비교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나는 우리의 창조적이고
신명나는  응원문화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야구장도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미국 야구장에는 없는 늘씬한 치어리더들이 전체 관중과 밀착되지 못한
그들만의 율동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프로야구가 있긴 전의 학창 시절엔
동대문야구장 (당시에는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친구들과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술집'이란 호칭을 붙이고 '안타주'니 '삼진주'니 하며
호칭에 걸맞는 장소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제 관중들은 조용하게 선수들의 움직임만을 바라보는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또 다른 분위기의 놀이판을 창조하여 실질적인 주체로 나서고 있었다.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는 단지 관중들이 놀고 즐기는 매개물이었다.
떠들석한 함성과 구호와 노래와 춤.
그것은 스코어보드의 숫자와는 상관없을 수도 있는 작은 축제일 뿐이었다.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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