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존재하는 것들1 겨우 존재하는 것들 산 아래 모든 집들이 가슴 앞에 불 하나씩 단정하게 달고 있습니다. 앓아누운 노모가 자식의 손에 자신의 엷은 체온을 얹듯 세상의 어둠 위에 불들은 자신의 몸을 포갭니다. 땀보다도 그림자보다도 긴 흔적들 짚불보다 더 뜨겁습니다. 불빛 너머 손금처럼 쥐고 그댈 그리워하던 내 마음도 창호지 밖 그림자로 어룽입니다. - 강형철의 시, “겨우 존재하는 것들 3” - ‘세상의 어둠에 자신의 몸을 포개’던 불빛이 사라진 옛집들은 우리를 스산하게 합니다. 떨어져나간 문짝이며 버려진 세간들, 아직 벽에 걸린 낡은 달력과 구구단표, 빛 바랜 몇 줄의 낙서는 우리를 애처롭게 합니다. 울타리를 따라 하얗게 핀 찔레꽃도 더 이상 화사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잡풀 우거진 마당을 서성이다보면 아직도 흘러가는 시간과 싸우며 한 .. 2005. 5. 1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