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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겨우 존재하는 것들

by 장돌뱅이. 2005. 5. 19.


          산 아래 모든 집들이
         가슴 앞에 불 하나씩
         단정하게 달고 있습니다.  

         앓아누운 노모가
         자식의 손에
         자신의 엷은 체온을 얹듯
         세상의 어둠 위에
         불들은
         자신의 몸을 포갭니다.  

        땀보다도
        그림자보다도 긴
        흔적들
        짚불보다 더 뜨겁습니다.  

        불빛 너머
        손금처럼 쥐고 그댈 그리워하던
        내 마음도
        창호지 밖 그림자로 어룽입니다.  

                    - 강형철의 시, “겨우 존재하는 것들 3” -


‘세상의 어둠에 자신의 몸을 포개’던
불빛이 사라진 옛집들은 우리를 스산하게 합니다.  

떨어져나간 문짝이며 버려진 세간들,
아직 벽에 걸린 낡은 달력과
구구단표, 빛 바랜 몇 줄의 낙서는
우리를 애처롭게 합니다.
울타리를 따라 하얗게 핀 찔레꽃도
더 이상 화사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잡풀 우거진 마당을 서성이다보면
아직도 흘러가는 시간과 싸우며 한 때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지키고 있는 옛집들이 대견스럽기도 해
기울어진 기둥이나마 조용히 쓰다듬어 보게 됩니다.  

언제나 희망은 그렇게 ‘겨우 존재하는 것들’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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