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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행복한 영화보기 14. - 실미도

by 장돌뱅이. 2005. 4. 28.

 


30여 년 전이니 중학교 때였다.

당시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고교야구대회를 중계하던 방송이
별안간 중단되면서 뉴스속보가 흘러나왔다.
무장공비들이 시외버스를 탈취, 서울로 진입하여 유한양행 앞에서
군, 경과 대치 중이라는 것이었다.
뒷날 나는 그것이 북에서 온 공비들이 아니라 남에서 북으로 보내는
‘간첩’이라는 사실을 어른들의 수군거림에서 알게 되었다.
그때 뉴스속보의 내용은 바로 영화 실미도의 비극적인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가급적 가상의 이야기로 이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었다.
새해 첫 영화를 보며 너무 불편해지기 싫었다.
마치 허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긋하게 보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가 비극의 강조를 위해 설정을 해둔 상투성은 속속 드러나 보였다.

가장 손쉬운 것은 어머니였을 것이다.
월북을 한 지아비와 그로인해 탕아가 되어버린 아들을 둔
한 많은 이 땅의 어머니.
그래서 결코 누워서 편안한 잠을 자지 않는다는 어머니.
탕아의 주머니 속에 몰래 감쳐둔 그 어머니의 구겨진 사진.
유똥치마의 기억.

어처구니없는 이른바 ‘조국의 통일’의 논리.
빗속의 사지로 떠나가는 이름 없는 무리들.
겉으로는 냉혈인간이지만 속내는 따뜻한 상사 혹은 그 반대의 인간.
국가라는 조직과 인간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

그러나 아내와 딸아이는 그 '상투성'에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런 그들을 놀렸지만 솔직히 나 역시 극장 안의 어두움 덕분에
헤픈(?) 감정을 숨길 수 있었다.
이쯤 되니 나로서는 영화 실미도의 상투성을 꼬집을 수만은 없겠다.

나는 허리우드영화처럼 실미도를 보는데 결국 실패한 셈이다.
그것은 내 어린 날의 기억 한켠을 두려움의 먹구름으로 드리우던
사건이었던 것이다.

상투적인 것은 영화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다.
실미도의 존재를 가능케 했던 한반도의 정치적 토대는 30여 년 전에서
별반 변한 것이 없다. 선거만 다가오면 북과 관련된 일들은 종종 과장되고
조작되고 왜곡되는 상투성도 여전하다.
다만 영화의 상투성엔 눈물을 질금거릴 뿐이지만
현실의 상투성엔 헛웃음과 지겨움만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가는지도 모르겠다.
(2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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