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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충주를 지나며.

by 장돌뱅이. 2005. 4. 27.


어둠 속에서 누구나 부른다
행인이 있으면 누구나 손짓을 한다
아무개 아니냐, 아무개 아들이 아니냐
또랑물에 발을 담근 채 노래도 그친 채
논둑에 앉아 캄캄한 밥을 먹는 농부들
일찌기 돈도 빽도 없이 태어난 농부들
사람이 죽으면 지붕 위에 속옷을 던져 놓고 울던 농부들
정든 조상들이 죽어 묻힌 산줄기에 에워싸여
자식이나 키우며 감나무나 키우며 살아가더니
오늘은 어둠 속에서 누구나 부른다
가까이 가보면 젊은이들은 그림자도 없고
늙은이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
밥을 이고 나온 꼬부랑할멈뿐인데
아무개 아니냐, 아무개 아들 아니냐
덥석 손을 잡고 많이 먹고 가라 한다
수렁냄새 젖은 손가락으로 김치도 찢어주며
오동나무 잎새에 머슴밥을 부어 놓는다
밤길을 아니 걷는 게 영리한 것이여

밤엔 사람이 제일로 무서운 놈이란 말여
풀바작을 짊어진 채 땅거미에 엎어진
파아란 넋들, 그 시절의 젊은이를 되뇌이며
달빛에 너울대는 성황당 두레산길
양키보다 몇 배 더 큰 시멘트 전봇대가
잉잉 소리치며 우쭐우쭐 쑤욱 자라나는
도깨비불이 휘익 쏟아져내리는 상수리나무 골짜기
호박같이 쭈그러진 얼굴로 감추면서
무거운 밥숫가락에 뻘건 김치를 올려준다. 

- 김준태, 「들밥」-

 (2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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