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 모든 집들이
가슴 앞에 불 하나씩
단정하게 달고 있습니다.
앓아누운 노모가
자식의 손에
자신의 엷은 체온을 얹듯
세상의 어둠 위에
불들은
자신의 몸을 포갭니다.
땀보다도
그림자보다도 긴
흔적들
짚불보다 더 뜨겁습니다.
불빛 너머
손금처럼 쥐고 그댈 그리워하던
내 마음도
창호지 밖 그림자로 어룽입니다.
- 강형철의 시, “겨우 존재하는 것들 3” -
‘세상의 어둠에 자신의 몸을 포개’던
불빛이 사라진 옛집들은 우리를 스산하게 합니다.
떨어져나간 문짝이며 버려진 세간들,
아직 벽에 걸린 낡은 달력과
구구단표, 빛 바랜 몇 줄의 낙서는
우리를 애처롭게 합니다.
울타리를 따라 하얗게 핀 찔레꽃도
더 이상 화사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잡풀 우거진 마당을 서성이다보면
아직도 흘러가는 시간과 싸우며 한 때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지키고 있는 옛집들이 대견스럽기도 해
기울어진 기둥이나마 조용히 쓰다듬어 보게 됩니다.
언제나 희망은 그렇게 ‘겨우 존재하는 것들’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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