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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기념일4

결혼31주년 저녁 퇴근길에 꽃을 한 묶음 사들고 가지요. 손을 씻고 몇가지 음식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상 위에 술 잔 두 개를 놓아야지요. 맥주냐 와인이냐를 두고 잠시 고민할 것 같습니다. 케익과 초는 준비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만 연애 시절 우리가 좋아하던 "사월과오월"의 옛 노래 "등불"은 준비해야겠지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그래도 따뜻하게 옷을 차려입고 늦은 밤 산책을 거르지는 맙시다. 보름을 막 지났으니 하얀 달빛이 우리 걸음 마다 환하게 깔리지 않을까요? 마른 나뭇잎이 서걱이며 한 계절을 마감하는 뜰에는 맑은 풀벌레 소리가 낭랑할 것입니다. 31년이 지났습니다. 작고 평범한 일상으로 채운 시간이었지만 진부한 적은 없었습니다. 내겐 언제든 당신이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5. 10. 28.
결혼 30주년 많은 이야기를 갈피에 담아 두터워진 책처럼 30년의 발걸음과 시간이 쌓인 오늘입니다. 우리가 소망했던 모든 것들이 낯선 길모퉁이마다 마련되어 있었음을 다시 확인해봅니다. 당신이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주던 그곳 말입니다. 해서 우리가 지나온 만큼보다, 더 크고 황홀한 어떤 것을 꿈꾸지 않으려합니다. 오늘은 작은 저녁상을 준비해서 당신과 아주 오래 나란히 앉아 있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세상에 나만 아는 숲이 있습니다 꽃이 피고 눈 내리고 바람이 불어 차곡차곡 솔잎 쌓인 고요한 그 숲길에서 오래 이룬 단 하나 단 한번의 사랑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랑입니다 -김용택의 시, 「단 한번의 사랑」- 2014. 10. 28.
결혼 27주년 퇴근길. 집 앞에서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당신 이름을 부릅니다. 대답한 당신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의 길지 않은 그 시간이 날마다 따뜻했습니다. 또 한 해. 스물일곱 해. 미래는 과거에서 온다고 했던가요? 우리가 지나며 가꾸어 온 시간 또한 그렇게 앞길 저만치에서 다시 만나야 할 익숙한 운명이기도 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11.10) 2013. 4. 16.
결혼 스물여섯 해 우리의 만남에 또 한해를 더했습니다. 자주색 원피스가 예뻤던 젊은 당신이 낡은 운동화에 검게 물들인 군복바지 차림의 아무런 현실적 의식도 지니지 못한 내게 따뜻한 손을 내주며 생의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한 것이 스물여섯 해 전입니다. “햇빛이 잘 드는 집이면 좋겠다.” 신혼 초 작은 단칸 셋방에서 당신이 바란 것은 세상에 가장 흔한 햇빛 한 줌이었습니다. 아픈 기억이지만 그때도, 그때를 회상하는 지금도, 우리의 시간이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내가 변함없는 철부지라서가 아니라 당신이 내게 늘 살가운 손을 내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날들에 허튼 약속을 걸기보다 우리가 함께 해 오는 동안 당신이 지켜온 넉넉한 나눔과 차분한 기다림의 의미를 겸허하고 벅찬 마음으로 돌아보겠습니다. 푸른 하늘이 .. 2013.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