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만남에 또 한해를 더했습니다.
자주색 원피스가 예뻤던 젊은 당신이
낡은 운동화에 검게 물들인 군복바지 차림의
아무런 현실적 의식도 지니지 못한 내게
따뜻한 손을 내주며 생의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한 것이 스물여섯 해 전입니다.
“햇빛이 잘 드는 집이면 좋겠다.”
신혼 초
작은 단칸 셋방에서 당신이 바란 것은
세상에 가장 흔한 햇빛 한 줌이었습니다.
아픈 기억이지만
그때도,
그때를 회상하는 지금도,
우리의 시간이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내가 변함없는 철부지라서가 아니라 당신이 내게 늘 살가운 손을 내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날들에 허튼 약속을 걸기보다 우리가 함께 해 오는 동안
당신이 지켜온 넉넉한 나눔과 차분한 기다림의 의미를 겸허하고 벅찬 마음으로 돌아보겠습니다.
푸른 하늘이 눈부신 날입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던 내 젊은 어느 가을날의 서울 하늘이 그랬었지요.
그 날처럼 당신을 사랑합니다.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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