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번씩은 당신에게 전화를 했던 것 같습니다.
출근을 해서 오전 일과를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는 점심시간이 되거나
하루일이 마무리 되는 저녁시간이 되면.
이젠 습관처럼 굳어진 오래된 일과이기도 합니다.
내 기억으론 우리가 함께 한 25년 전부터 시작된 것 같지만
기억이란 자칫 과장의 오류를 만드는지라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설사 내가 잘못된 기억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당신에게 가까이 서있고자 하는 나의 '어리광'을 탓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날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당신이 보낸 반나절이나 하루가 어땠는지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 등을 물어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별난' 일 없다는,
숨을 몰아쉬며 흥분할 필요도 없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있을 리 없다는 이유때문에,
아주 작고 은밀한 당신의 일상과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시간에 나는 깊이 감사하며 지냈습니다.
부부란 서로의 작은 이야기를 가장 크게 들어주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베란다에 놓아둔 화분에 낮동안 꽃몽오리가 맺혔다던지,
마음 먹고 냉장고 정리를 했다던지,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었다던지,
옛 제자에게서 편지가 왔다던지,
며칠 째 읽어왔던 책을 드디어 끝냈다던지,
창밖으로 노을빛이 화려하다던지,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게를 끓여놨다던지,
......
그렇게 당신과 함께 25번의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보냈습니다.
계절은 계절 아닌 것이 없게 한다고 합니다.
봄이 오면 봄 아닌 것이 없고 여름이 오면 여름 아닌 것이 없으며
가을은 가을 아닌 것이, 또 겨울은 겨울 아닌 것이 없습니다.
계절처럼 지나간 25년을 돌아다보면 당신은 함께 보낸 그 시간에 사랑 아닌 것이 없게 합니다.
행복과 희망, 환호성과 즐거움의 시간은 물론 슬픔과 초조함, 침묵과 아픔의 시간들까지 말입니다.
사람들은 결혼 25주년을 은혼식이라고 부릅니다.
어제 저녁이 그 날이었습니다.
미국인들 중 50년 대에 결혼한 70%는 은혼식을 치렀지만
1970년대 말 결혼한 부부는 50% 미만의 사람들만 은혼식을 치루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은혼식이 옛날에 비해
통과하기가 힘든 관문(?)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통계입니다.
해서 평소 가까이 지낸 주변의 사람들이라도 초청하여
좀 떠들석하게 우리의 축일을 자랑이라도 해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우리는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더 길게 이어질 장구한 만남이 있는 터에
'까짓' 25주년 가지고 수다 떨 것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남은 만나도 모자라 우리는 늘 모자람으로 가슴 부풀어 지낸다고 시인처럼 말한다고 해도
우리가 너무 낯 간지러운 자화자찬의 과장 속에 사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작은 케익에 25년의 촛불을 세우며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이
지나간 25년처럼 살자고 우리는 다짐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 연애시절에 좋아하던 노래를 들었습니다.
고조된 분위기를 틈타 나는 옛시를 암송하는, 벌써 몇 년째의 상투적인 수법으로
준비하지 못한 선물을 은근슬쩍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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