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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사랑이라고 부른다

by 장돌뱅이. 2013. 4. 12.

김훈의 수필집 『바다의 기별』속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딸아이가 공부를 마치고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았다. 딸아이는 나에게 휴대폰을 사 주었고
   용돈이라며 15만원을 주었다. 첫 월급으로 사 온 휴대폰을 나에게 내밀 때, 딸아이는 노동
   과 임금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고, 그 자랑스러움 속에는 풋것의 쑥스러움이 겹쳐 있었
   다. 그때 나는, 이 진부한 삶의 끝없는 순환에 안도하였다.
   그 아이는 아마 월급쟁이로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
   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는 이 무사한 하
   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이 여자아이가 또 여자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여자아이를 낳을 것이다. 나는 이 진
   부하게 순환되는 삶의 일상성 속에서 기적과도 같은 경이를 느꼈다. 삶은 느리고도 길게 계
   속되는 것이고, 무사한 그날그날 속에서 젖을 토하던 아이가 다 큰여자로 자라는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내미는 딸을 바라보며, '아, 살아 있는 것은 이렇게 좋은 것이로구나' 그런 생
   각을 하면서 혼자 기뻐했다.

부녀간의 오붓한 사랑의 교감과  '진부하게 순환되는 삶의 일상성' 속에서
소중한 가치를 벼려내는 글쓴이의 시각이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나 한다지만 그의 '팔불출 짓'에 힘 입어 나도 한번 흉내내고 싶어진다.
딸아이는 직장 생활 1년차이다. 겨우 수습을 뗀 처지의 말단 사원이다.
월급이라는게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지난 1월 귀국길에 아내와 나의 건강검진을 받게
해주겠다고 오래전부터 성화를 부렸다.

병원이라면 질색을 해온 나의 성미를 고려해서인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딸아이의 태도가 역력히 느껴졌지만
몇 마디 만류를 하다가  딸아이의 고집에 나는 언성을 높이까지 했다.
그러나 딸아이는 나의 그런 성미쯤이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개의치 않고 날마다 국제전화를 걸어 밀어부치고 사정하고 애교를 떨며 나를 달랬다.
갑작스런 생각이 아니라 첫 월급을 받으면서부터 순전히
이를 위해 매달 얼마씩을 떼어 놓았다는 것이다.


*위 사진 : 유치원이래 딸아이는 아내와 나에게 종종 살가운 내용의 편지를 보내곤 했다.
               내가 무얼로 어린 딸아이를 걱정시켰는지는 모르겠다.

알고보니 건강검진도 여러 등급이 있었다.
모든 등급의 비용이 만만치 않은 터에 딸아이가 계획하고 있는 것이 터무니 없이 높은 등급이었다.
지난 한 해 주위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소식이 그녀를 불안하게 했던 모양이다.

아내와 내가 검진 비용의 반을 내겠다고 하는 최종 제안도 관철되지 못했다.
등급을 한 단계 하향 조정을 하는 것으로 가까스로 합의를 봤지만
녀석은 나의 검사 항목에 슬쩍 심장검사까지 끼워 넣었다.
(내가 가끔씩 가슴을 손으로 두드린 적이 있는데 이를 주목한 것이다. 나는 검사를 받고나서야 알았다.)


*위 사진 : 딸아이가 준 편지와 카드를 모아 나는 늘 해외출장길에 지니고 다녔다. 일을 마치고
              호텔빙에 누워 반복해서 읽어도 그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술을 마시면 산아제한의 정부시책을 비꼬는 뜻으로
'아들딸 구별 말고 두 번씩만 신세지자' 라고 곧잘 떠들곤 했지만
사회 초년병의 딸아이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는 것 같아 좀 부담이 되었다.
그런 중에도 솔직히 내심 기분이 좋았던 것은 또 뭔지.......

지난 1월 결국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별 이상이 없었다.
콜레스테롤이 좀 높다는 것을 빼곤.
검사 결과를 보고 '괜히 돈만 쓴 꼴'이라고 했다가
아내와 딸아이로부터 "어쩔 수 없는 쫌생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출국날 딸아이는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서운해 했다.
모처럼의 귀국 길에 친구와 회사를 핑계로 하는 밤 늦게 귀가를 하고
집에 있으면 인터넷이나 책으로만 시간을 보낸 나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나로서는 딸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음에도 함께 다녀온 제주도
여행만으론 일년 동안 헤어져 있어야 했던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위 사진 : 딸아이는 장난을 좋아해서 같이 있으면 심심할 겨를이 없다.

4월 초에 다시 한번 잠시 한국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회사 업무와 아내가 입원한 병원을 오가는 시간이 주였지만
1월의 나의 잘못을 기억하여 나는 가급적 많은 시간을 딸아이와 함께 보내고자 했다.

다시 출국날이 다가왔다.
딸아이는 아예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침부터 나의 밥상을 준비했다.
부산을 떠는 딸아이의 모습이 애처로워보이면서 나는 출국하기가 싫어졌다.
그러나 싫다고 안할 수 없는 일이어서 '쫌생이'답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방식이 갑자기 한심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이 기회에 그냥 확 때려쳐 버릴까?'하는, 결국은 저지르지도 못할 극단적인 상상을
해보다가는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을 용기와 능력 없는 탓이라고 자학해보다가는,
어처구니 없게도  되려 딸아이에게 성질을 부렸다.
"휴가는 뭐할려고 내? 차 타고 획 가면 그만인데. 쫄따구가 그렇게 여유가 있냐?
그리고 뭐 할려고 이렇게 반찬을 많이 했어. 아침인데 가볍게 먹고 가면 되지" 등등.
이러는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꾸 말이 엇나가고 있었다.
딸아이는 반찬투정하는 아이를 어루듯 "어때 내가 만든 음식 맛있지?" 하며
밝은 목소리로 애교를 떨었다.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도심공항버스를 타기 전 그곳까지 배웅을 온
딸아이를 힘주어 안아주었다. 그리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사과를 했다.
"미안해 짜증 부려서. 사실 너한테 그런 게 아니긴 한데....."
딸아이는 "진짜 좀 황당하긴 했지" 하며 웃음을 짓다가
끝내 표정이 일그러지며 눈물을 보였다.


*위 사진 : 4월 귀국 중 나의 생일이 있었다. 딸아이의 유별난 수다에 두 번이나 케익을 자르고
               축하 노래도 두 번이나 들어야 했다.

미국으로 온지 며칠 뒤 수술을 하고 아직 몸조리 중인 아내가 메일을 보내왔다.

   (딸아이가) 수고가 많아.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회사 가기 전에 청소를 하고
   과일도 두 가지쯤 씻어서 타파에 넣어놓고 가.
   설겆이도 하지말고 놔두라고하고
   저녁이면 퇴근해서 음식을 만들고.
   생과일쥬스도 맛있게 갈아내곤 해.
   저러다 몸살이라도날까 걱정이 되네.



딸아이의 따뜻한 마음을 눈으로 보는 듯 했다.
나는 벽에 걸린 가족 사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모두 사랑해"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바다의 기별』중에서 -

(2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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