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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2

손자가 만들어 준 그릇 "저 재료들 한꺼번에 다 쓸어 넣고 그냥 잡탕 찌개로 끓여도 맛있을 건대 뭘 저리도 지고 볶으며 수선을 피우는 것인지······ ." 신혼 초 어느 휴일 아침, TV 요리 강좌를 보며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무심히 던진 나의 말이었다. 아내는 요리와 주부들에 대한 독설이자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이야 식사가 몸속에 기초대사량에 필요한 영양분을 채워 넣는 '주유(注油)' 행위 이상의 소중한 의미를 지닌 일상이고, 음식은 '잡탕찌개'의 불필요한 변형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젊은 시절엔 요리교실이란 걸 다분히 유한마담들의 심심풀이쯤으로 인식하고 있기도 했다. 한 번은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그릇 자체보다 그 안에 담는 내용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릇이야 뭐 그냥 용기일 뿐이잖아." 음.. 2022. 1. 7.
내가 읽은 쉬운 시 121 - 오세영의「그릇」 '내가 드디어 그릇을 샀다'는 글을 본 지인이 "그릇 자체의 아름다움도 매혹의 영역이지만 그 담김의 상상이 결국 그릇의 매력"이라는 격려의(?) 글을 보내주었다. '담김의 상상'이란 말이 좋아서 나는 며칠동안 틈틈히 마음 속으로 되새기며 다녔다. 담김만큼 담김이 만들어낼 관계에 대한 상상이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신영복 선생님의 글 "당무유용" 노자(老子)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埏埴以爲器當其無有器之用(선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즉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비어있음'으로 해서 그릇의 쓰임이 생긴다"는 뜻이다. 노자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는 힘들지만, 무엇인가 담길 수 있는 '비어있음'의 가치가 모양과 색상, 무늬와 질감 등의 '유(有)'보다 본질적이거나 최소한 상호보완적이.. 2019.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