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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3

평온한 날은 평온한 마음으로 손자저하가 집에 오는 날. 점심 무렵에 도착하기에 아침부터 음식을 만들었다. 저하가 좋아하는 치킨마요에 고명으로 쓸 달걀채부터 시작했다. 아내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동그랑땡과 김부각을 부치고 튀겼다. 두 명의 저하들은 아무 거나 잘 먹어주어서 우리를 기쁘게 했다. 첫째와 달리 둘째가 콩밥을 잘 먹는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른들을 위해 샐러드와 불고기, 북엇국 그리고 얼마 전 태국 여행에서 사 온 소스로 "꿍팟뽕커리(Fried Shrimp with Curry Sauce)"를 만들었다. 밥을 먹고 나서 나는 새로운 마술 몇 가지를 첫째에게 알려주었다. 첫째는 신이 나서 그것이 마치 자신이 갈고닦은 비기(秘技)인 것처럼 의기양양 식구들에게 선 보였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여러 가지 놀이와 게임을 시작.. 2022. 7. 12.
내가 읽은 쉬운 시 28 - 박목월의「나그네」 나그네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 지훈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시를 이야기 하면서 「나그네」를 빼놓을 순 없다. 「나그네」는 1946년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이 함께 발간한 시집 『청록집』에 수록되었다. 1940년대 초 조지훈이 박목월에게 보낸 시 「완화삼(玩花衫)」 가운데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라는 대목에서 힌트를 얻어 박목월이 화답시로 조지훈에게 보낸 작품이다. 완화삼은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를 의미한다. 당시 20대였을 젊은 시인들의 문학적 나눔이 격조가 있어 보인다. 「나그네」는 우리의 토속적 음률과 서정으로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선명하고 참신한 .. 2015. 5. 3.
내가 읽은 쉬운 시 27 - 박목월의「윤사월」 출장에서 돌아오니 아파트 화단의 봄꽃이 장관입니다. 아내는 창가로 다가갈 때마다 만개한 꽃들을 내려다보며 “어쩜! 저 꽃 좀 봐!” 하며 감탄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어느새 사월이 된 것입니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오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이고 엿듣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교과서에서「윤사월」을 읽었습니다.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이 시의 색조를 묻는 중간고사 시험 때문입니다. 그때 나는 “초록”을 답으로 골랐고 정답은 “노랑”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송홧가루와 윤사월, 그리고 꾀꼬리라는 시어가 주는 노란 색감이 시를 관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업시간 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약간의 질책성의 어조로.) 나는 .. 2015.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