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미정2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아내의 오래된 신발을 버리다 생각난 시. 눈이 동그랗거나 아니면 코가 오뚝해서, 혹은 신발이 예쁘거나 비싼 외투를 입었다는 단편적인 이유만으로 누구를 사랑하진 않는다. 사랑은 총체적인 것이고 그래서 상대의 진귀함뿐만 아니라 발톱 밑 박테리아의 콧털까지 사랑하는 것이고,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 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 2023. 2. 27.
내가 읽은 쉬운 시 103 - 성미정의「실용적인 마술」 캠핑에 빠진 적이 있다. 미국에서 살 때였다. 주말이면 자주 아내와 캠핑을 갔다. 내가 살던 캘리포니아는 일 년 내내 캠핑에 더없이 좋은 날씨를 가진 곳이었다. 산과 들, 바다와 계곡, 어디건 작은 비닐 천막을 쳐놓으면 보금자리가 되었다. 한국에서 가져간, 20여 년 전 등산을 다닐 때 쓰던 낡은 텐트였지만 둘이서 하루나 이틀을 자는 덴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식사를 마치고 어두워지면 파이어링(FIRE RING)에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주위의 풍경들이 어둠 속으로 완벽히 풀어질 때까지 불가에 앉아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들었다. 밤이 깊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촘촘히 돋아나 있었다. 우리가 '캠핑장의 힐튼호텔'이라고 불렀던 바닷가 캠핌장에서는 파도소리가 더해지기도 했다. .. 2019.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