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오래된 신발을 버리다 생각난 시.
눈이 동그랗거나 아니면 코가 오뚝해서, 혹은 신발이 예쁘거나 비싼 외투를 입었다는 단편적인 이유만으로 누구를 사랑하진 않는다. 사랑은 총체적인 것이고 그래서 상대의 진귀함뿐만 아니라 발톱 밑 박테리아의 콧털까지 사랑하는 것이고,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 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당신도 언젠가 모든 걸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 성미정,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늘 시만큼 달콤하게 아내를 대하며 살지는 못한다.
반성의 의미를 포함하며 시를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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