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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민화―요(樂)"보러 가기

by 장돌뱅이. 2023. 2. 25.

코로나는 많은 사람과 많은 거리를 '오랜만'이게 만들었다.
인사동도 그렇다. 얼마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블로그의 글을 뒤져보니 2016년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렸던 "리얼리즘의 복권전"을 본 것이 마지막인 것 같다. 아마 그 뒤로 손자저하가 태어나고 코로나가 이어지면서 가보지 않게 된 것 같다. 꼭 전시회 관람이 아니더라도 식사와 술, 그리고 찻집을 찾아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말이다.
(*이전 글 : 인사동 카페 "귀천")

 

인사동 카페 "귀천"

천상병은 중학교 시절에 문단에 이름을 올린 천재 시인이었다. 1967년 이른바 '동백림 사건'에 관련된 친구로부터 몇 백 원씩의 술값을 빌린 적이 있다는 이유로 함께 '간첩'으로 몰리게 되었다.

jangdolbange.tistory.com

어반스케치 동호회 회원 중의 한 분이 본업인 민화를 전시한다고 해서 모처럼 인사동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거리에는 평일임에도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특히 음식점과 찻집이 만원이었다.
"주말엔 더 해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 일행이 말했다.

최근에 읽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1』권에는 인사동 길에 대해 이렇게 나와 있었다.

인사동이 이렇게 다 망가졌다고 말할 정도로 변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은 사람의 살내음이 느껴지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인사동 길의 인간적 체취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인사동 공간 구조의 뼈대에서 나온다. 완만한 S자 곡선으로 휘어 있는 인사동길 700미터에 실핏줄처럼 수없이 뻗어 있는 골목길은 그 자체가 휴먼 스케일이다.
인사동 큰 길이 이처럼 가볍게 휘어 있는 것은 안국동천(安國洞川)이라는 개천을 복개했기 때문이다. 물길 따라 도로를 냈기 때문에 이처럼 편안한 것이다. 만약에 이 길이 도시계획에 의한 일직선이었다면 이런 인간미 넘치는 편안한 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사동길은 끝과 끝이 드러나지 않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서히 다른 장면이 나타난다.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직선은 아무래도 긴장과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 직선은 인간만이 만들 수 있다. 
유홍준의 글을 떠올리며 걸으니 아무 생각 없이 걷던 이전과 달리 인사동 길이 한결 더 편안하게 다가왔다. 길을 보는 데도 안목이 필요하다. 우리를 풍요롭게 해 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된장비빔밥과 오징어볶음으로  배를 채우고 전시회장으로 갔다.

민화(民畵)는 옛날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보는 다양한 소재들을 형식화한 유형에 따라 그린 그림이다. '백성들의 그림'이라는 이름에서 우선 친근감이 느껴진다. 전시회를 주관하는 운산회의 대표 김용기 씨는 전시회 도록 머리글에서 "민화는 오랜 시간 한국인의 생활양식 저변에 깔린 미적인 감정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그림으로 우리의 미의식을 대표하는 회화양식"이라고 했다.

민화는 속화라 불리면서 정통 화단에서는 소외당해왔으나 근래에 들어 "민화에 대한 재인식이 싹트고 광범위한 자료수집과 연구가 시작되어 민화의 문화사적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민화는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양이 방대하고, 질에 있어서도 기왕의 일반적 민화 수준을 넘어서 기상천외의 독창적인 작품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다음백과)"

'요즘 인사동은 민화가 먹여 살린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민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사가 커졌다는 이야기겠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인사아트플라자 인근의 갤러리에서도 또 다른 민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민화―요(樂)"는 전통 민화의 단순 재현이 아닌 현대적인 상상력과 기교와 의미를 가미한 작품들의 전시이었다. 종이 위에 그린 그림만이 아니라 흙을 파고 채색을 하여 도자기로 구워낸 작품도 있었다. 
"서양화는 멀리서 민화는 가까이서 보라"고 한 분이 알려주었다.
세밀하고 꼼꼼한 붓질과 묘사에 주목하라는 뜻이겠다.

우리를 초대해 준 지인은 50 이후의 나이에 민화의 매력에 눈을 떠 열정적으로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그린 "그대의 아트웰"은 화폭을 가로세로로 나누고 각각의 틀 속에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반영하는 다양한 모양들 그려 넣었다. 문갑, 호랑이와 학, 집, 책, 붓, 도자기, 고양이, 어항 물고기 등등.

눈길을 끄는 것은 그림 중앙텔레비전 형태 속 디즈니로고와 그 주위를 감싼 디즈니사의 영화 영문 제목들이었다.
지인은, 우리의 전통 민화 속의 다양한 소재들과 현대의 디즈니의 여러 캐릭터들이 본질과 기능적인 면에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림에 대한 안목이라고는 '1도 없는' 문외한인 나이지만 민화 속 디즈니 로고가 생뚱맞아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도 됨직하게 보였다. 

전시회 도록에는 다음과 같은 글도  나와 있었다. 

민화의 크고도 중요한 기능이자 미덕 중의 하나는, 이를테면 '나눔'과 '소통'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 나눔은 '길상적 소재'가 상징하는 좋은 기운이나 행복에 대한 염원의 공유를 뜻하고 소통은 그런 좋은 바람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서로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같은 걸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민화는 작가의 내면세계가 표현된 엄숙한 예술작품이라기보다 내가 나에게, 내가 이웃에게 보내는 따뜻하고 행복한 염원이 담긴 아름다운 메신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민화의 이러한 속성 내지 정체성은 전통민화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아야 하는 현대민화에서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이다.

- 유정서, 「민화에 담은 유쾌한 소통과 나눔의 미학」중에서 -

나눔과 소통. 언제 어디서나 진리 아닌가. 나눔이 없는 '몰빵'이나 독점, 소통이 없는 단절과 고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미술을 몰라도 미술관을 돌아보는 시간은 한가롭고 차분하다.

날이 풀리면 아내와 함께 인사동 나들이도 자주 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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