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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3

눈 내린 서울의 궁궐과 능 조선의 궁궐은 외국의 예에 비해 소박한 편으로 결코 화려하지 않다. 백성들이 보아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화려함이라고나 할까. 그 이유는 조선 건국의 이데올로기를 제시하고 한양의 도시 설계와 경복궁 건립을 주도한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찾을 수 있다. 궁원 제도가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 없게 될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검소란 덕에서 비롯되고 사치란 악의 근원이니 사치스럽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할 것이다. 궁궐 건축에 대한 정도전의 이런 정신은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던 우리 궁구.. 2021. 2. 14.
봄바람 지금은 봄꽃이 거의 절정이지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봄은 아직 꽃몽오리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날씨는 화창하기 그지 없었다. '이런 날 집안에 있는 것은 죄악'이라고 아내를 부추켜 강변길로 나섰다. 터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아파트 화단의 백목련과 산수유. 물오른 강변의 버드나무. 잔물결에 일렁이는 햇볕에까지 봄은 어느 샌가 세상에 봄 아닌 것이 없도록 은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친구 부부들과 모임을 갖고 창경궁과 창덕궁을 걸었다. 거기서도 옛 왕궁의 근엄함을 다독이는 봄기운에 취해야 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은근한 노란색의 산수유.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이웃집 점순이가 "뭣에 떠다 밀렸는지" 주인공의 어깨를 짚고 그대로 함께 픽 쓰러지며 파묻히던 알싸한 향내의 노란 동백꽃 속, 그.. 2015. 4. 3.
늦은 가을의 창덕궁 *위 사진 :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이다. 현존하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이다. 12월에 들어 눈이 오고 나더니 갑작스레 겨울이 와버린 듯 하다. 제법 매운 맛나게 밀려온 동장군 첫 기세가 쉽게 물러서지 않을 듯 벌써 며칠째 요지부동이다. 특별히 겨울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출장을 다녀온 뒤라 유난히 빨리 막바지에 이른 듯한 가을의 끝도 좀더 오래 음미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창덕궁 관람은 평소 정해진 시간에 안내원을 따라 정해진 곳을 돌아야 하는 아쉬움이 있는 장소다. 그런데 11월 중에는 일요일에 한하여 자유로운 입장과 관람이 가능했다. 특히 근래에 개방된 후원까지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어 오래 전부터 계획을 잡아두었으나 이런저런 일로 미루다 11월 마지막 일요일인 27일, 자유관람 .. 2012.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