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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해수욕장3

제주 함덕 30 최규석의 『송곳』은 제주에서 읽은 마지막 만화다. 프랑스계 대형마트 푸르미에서 벌어지는 노동운동에 대해 그렸다. 부당해고에 맞선 직원들의 노조 결성과 저항, -그러나 그 저항은 생경한 구호나 격렬한 투쟁으로 그려져 있지 않다. 누군가의 거룩한 희생도 없다. 다만 '시시한 약자'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짐을 진 채 갈등하고 고민하며 '시시한 강자'들에 맞서 행동한다. 그 디테일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회사의 편도 노조의 편도 아닌 곳에 나의 자리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자리를 결정할 권리는 나에게 없었다. 만화 속 한 중간관리자의 고백이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급증하던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했던 나에게 실감 나게 다가왔다. 그때 내가 어떤 위치를 선택할 수 있다고.. 2022. 11. 17.
제주 함덕 2 기온이 뚝 떨어져 쌀쌀하고 바람이 불었다. 하늘은 더할 수 없이 맑아 한라선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새벽녘에야 잠들었을 아내가 깰까 조심스레 문을 닫고 숙소를 나섰다. 초행의 숙소 주변을 눈에 익히고 아내와 오늘 갈 곳 미리 둘러볼 겸 산책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여행에서 아침마다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이번 여행은 함덕해수욕장만 왕복하며 보낼 수 있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허리로 인한 소박한 바람이었다. 숙소에서 함덕해수욕장에 이르는 도로의 상태를 살피고 소요시간을 체크하며 걸었다. 인터넷을 통하여 대략의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을 해보아야 했다. 해수욕장은 멀지 않았다. 편도로 채 10분 남짓 걸렸다. 아내의 걸음으로는 거기에 추가로 10.. 2022. 10. 22.
제주행1 - 나의 첫 올레길 성산 가는 길 조천 바닷가 축대 위에 연북정(戀北亭)이 있다. 그 옛날 제주로 파견된 관리나 권력 다툼에 밀려난 유배인들이 떠나온 곳과 자신을 내친 권력에 대한 충정과 사랑이 아직 변치 않았음을 시위하던(?) 장소라고 한다. ‘북에서 온’ 그들에게 제주는 어떤 곳이었을까? 변방에 버려진 처지지만 끝내 뼈를 묻고 싶지는 않은 곳? 아름답기는 하지만 척박한 곳? 한양에서 새로운 소식만 뜨면 곧바로 떠나야 할 곳이었을까?. 그래서 수많은 관리들이 이 섬에만 오면 그렇게 유난스러운 폭정으로 백성들을 수탈했던 것일까? 제주도를 “삶과 자연이 한 뭉수리로 얽힌” 현장으로 인식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연북정의 ‘북쪽 사람’들이 묻는 제주의 의미가 아니라 제주도와 그 속에서 살아온 제주 사람들이 묻는 ‘북’의 의미가.. 2012.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