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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가지가 담을 넘을 때

by 장돌뱅이. 2014. 5. 17.


넘어야 할 담이 부쩍 많이 생겨난 것 같은 요즈음.
그 굳건한 담들과 나 자신과 주변을 생각해 봅니다.

나의 존재와 그들의 존재가
필연적인 어떤 '도반'적인 관계라고는하지만
삶을 위해
어느 시인의 말대로 이 땅에 살기 위해
증오해야 할 것은 증오할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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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의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이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일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정끝별의 시, "가지가 담을 넘을 때" -

(20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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