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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2007년 1월 동해행

by 장돌뱅이. 2014. 10. 7.


*위 사진 : 속초항의 야경과 대포항의 모습

작년 여름 한 달간의 유럽 배낭여행은 딸아이의 사고와 행동에 크고 작은 변화를 주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국의 낯선 풍물들과 서툴게 만나면서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받는
(받아온) 당연한 것들에 대한 그립고 고마운 감정은 그것이 여행이 주는 상투적인
교훈이라 하더라도 소중해 보인다.
건강한 몸과 즐거운 집, 나아가 학비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등등.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자신이 누리는 ‘당연한’ 것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조건이라는) 깨달음은
바로 그 당연함 때문에 나 역시도 종종 망각하는 것이어서 기특할 뿐이다.

딸아이가 가족여행에서 최초로 이탈 의사를 표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가을 무렵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말여행을 준비하는 아내와 내게 딸아이는 난생 처음
“이번 주말에는 내가 빠지면 안될까?” 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아내와 나는 잠시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딸아이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딸아이가 자신만의 생활을 갖기
시작했다는 데서 분명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이론과는 달리
아내와 내겐 어딘가 좀 섭섭해지는 느낌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 뒤로도 딸아이는 가족여행에 줄곧 참여를 했다. 하지만 점차 선별적이 되어갔다.
우리 가족의 등반대장이라는 직책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산에 ‘게으름뱅이
언덕’(숨이 차거나 다리가 아파 더 이상 오르기 힘들 때나 그만 중간에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 바로 게으름뱅이 언덕으로 딸아이가 어릴 적 산행 중에 내가 딸아이를
독려할 때 쓰던 말이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난 뒤부터는 즐겨하던
산행도 불참이 잦아졌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딸아이는 더욱 아내와 나의 여행에서 멀어졌다.
그것은 딸아이의 성장에 더해 오로지 대학입시라는 지상과제에 올인해야 하는 한국적
교육환경의 특수성이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도 했다.
(다만 그 속에서도 고3 때까지 매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중에 짧은 기간일지언정
온 가족이 함께 해외여행을 빼놓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 가족은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

대학생이 되면서 딸아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족여행에 거의 동참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노는’ 일정을 소화하기에도 늘 바빠 보였다. 가끔씩 함께 연극이나 영화를 보거나
외식에 동참을 하는 것이 그녀가 우리에게 베푸는 최대한의 호의(?)였다.자신이 빠져주는 것으로
‘아내와 함께 하는 국토여행’을 더욱 오붓하게 만드는데 공헌했다고 억지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던 그녀가 두 달에 한번 정도는 함께 가족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은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뒤였다.
여행 내내 당연히 존재하고 주어진 것들에 대한 고마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행이 아니라도 대학교 3학년이라는 그녀의 나이가 그런
정도를 생각하기에 충분한 나이였겠지만 최소한도 여행이 그런 깨달음을 앞당기는
촉매작용을 했음이 분명해 보였다.

현지에서 만난 몇몇의 한국학생들과 얼마동안 동행을 하게 되면서 딸아이는 자신 역시
그곳이 초행길이고 누가 공식적으로 임명한 것이 아니었었음에도 어쩌다보니 인솔자처럼
앞장을 서게 되었다고 한다. 딸아이는 그것을 두고 어릴 적부터 방학 때마다 있었던
해외여행 경험의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날마다 낯선 곳에서 보내야하는 여정이다 보니 누적된 긴장과 피곤함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동행인 간에 간혹 사소한 일에도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지친 딸아이에게는 수고로움에 비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볼거리와 찌는 듯한 날씨에 대한 동행인의 하소연이 마치 인솔자인 자신을 탓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을 것이다. 딸아이는 그때마다 가족여행 중 가족여행 중에 자신이
부렸던 투정과 게으름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내를 했다고 한다.
“엄마 아빠도 나와 여행을 할 때 이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딸아이는 나보다 속이 깊다. 어릴 적부터 딸아이는 너무 수다스러운 것이
문제일 정도로 명랑했다. 여행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억지나 게으름을 피울 때도
있지만 그런 빈도나 정도는 어린 아이로서 자연스러운 수준이었다. 문제는 딸아이를
대하는 나의 서툰 태도에 있었다. 나는 불만스러움을 여과 없이 표출하여 여행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곤 했던 것이다. 거기에 비해 타인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자신의 감정과
불만을 객관화하고 그것이 주는 교훈을 내면화한 딸아이의 자세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인다.

아무튼 겨울방학 중에 자신을 생각을 밝히며 가족여행에 정기적인 동참을 말하는 딸아이
때문에 아내와 나는 기분이 좋아졌고 감동까지 했다. 자신의 생활 속에 그런 규칙적인
계획을 넣는다는 것은 부모가 사는 방식을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거나,
적어도 이해를 모색해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 첫 여행길, 뒷좌석에 앉아 있는 딸아이를 힐끔힐끔 실내거울로 쳐다보며 달리는
영동고속도로는 내내 행복한 길이었다.


*위 사진 : 주문진


*위 사진 : 강릉 선교장


*위 사진 : 신복사터


*위 사진 : 굴산사터의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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