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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마늘까기

by 장돌뱅이. 2015. 6. 14.

몇 해 전부터 취미(?) 삼아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이 사용한 양념 재료는 마늘일 것이다.
초보자인 내가 참고하는 인터넷과 책의 조리법에는 
거의 모든 찌개와 국,
각종 무침과 조림에 마늘을 넣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가끔씩 마늘 넣는 것을 깜박 잊었을 때 혀끝은 맛의 차이를 명확하게 감지했다.
마늘은 삼겹살이나 회를 쌈 싸먹을 때만 필요한 부속 재료가 아니라
우리 입맛의 바탕을 이루는 필수 재료였던 것이다. 
하긴
신화 속의 웅녀(熊女)가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어 우리의 시조인 단군을 낳지 않았던가. 
우리 존재의 기원을 담고 있는 식재료답게
한국인은 일인당 가장 마늘을 많이 먹는 국민이라는 조사도 있었다.

내가 음식을 만든다고 했지만 이제까지 조리 준비는 사실 아내가 해준 셈이었다.
마늘은 늘 다져져 냉장고 속에 있었고 대파와 쪽파는 적절한 크기로 썰어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그냥 레시피에 나와 있는 양을 덜어 넣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엇그제 마트에 갔던 아내는 불쑥 마늘을 몇 접  사가지고 왔다.
"햇마늘이 너무 좋아보여서. 메르스 때문에 나다니기도 뭐한데 집에서 야구 보면서 마늘이나 까지 뭐."
나는 귀찮아서 불평부터 늘어놓았다.
"헉! 두 식구 사는데 뭔 마늘이 이렇게 많이 필요해." 
"많은 거 아니야. 이 정도는 필요해. 거기다 이젠 두 집 걸 해야 하잖아."
아내는 결혼한 딸아이 몫까지 염두에 둔 것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마늘 까는 일도 그랬다.
단순히 껍질을 까는 한가지 공정이 아니었다.
우선 마늘을 낱개로 해체하여 칼로 개별 마늘쪽의 끝을 잘라야 했다.
그 다음 하나하나 껍질을 벗겨서 씻고 물기를 빼, 
믹서기로 다져서 적당한 분량으로 지퍼락에 담아 냉동 보관을 하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결코 야구 한 경기 시청으로 끝날 과정과 양이 아니었다.
야구중계가 끝나고 오늘 경기의 분석과 설명에 이어
게임의 재탕방송이 끝나도 대야 속의 마늘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허리를 펴려고 잠시 쉴 때 딸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낼은 아무래도 삼성병원에 잠시 들렸다올까 고민 중이다.
메르스가 어떤지 모르지만 마늘까기가 더 힘든 거 같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혀를 찼다.
"쯔쯔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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